[영범]2020년 9월 9일 수요일

김영범
2020-09-09
조회수 88


2020년 9월 9일 수요일. 

날씨: 반짝반짝에 들어오니 딱 비가 오더라🌧


 오늘의 일기는 아무 말 대잔치다. 사진은 없다. 하루의 일을 사진으로 담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게 당연한 삶을 살고 있다. 그냥 내 일상은 사진으로 기록되지 않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출근하자마자 코옹코옹에서 믿음직한 한나 매니저님과 샐러드바 준비를 했고, 샐러드바 준비가 끝나기 무섭게 다음 회의를 준비했다. 민지 씨와 회의에서 지난 두 달간 프로젝트 진행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기로 했다. 내가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역할을 가진 사람으로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열심히 살았지만 미안한 일이 많은 프로젝트다. '뭐 어쩌겠어. 욕심 많은 탓이지...' 결과적으로 협력 관계에서 초기에 약속했던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정해진 기간에 계획한 성과를 모두 내지 못했다. 잘못한 상황은 차치하고 지금의 상황에 최선의 선택으로 수습하고 해결하는 게 아쉬움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방법이다. 잘못하거나 미안한 일을 변명할 생각은 없다. 할 말은 하고 사과할 부분은 확실히 사과한다. 뭐 적당히 살지 않았기에 이 또한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으며 나아갈 뿐이다. 그렇게 조금씩 미숙한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한 발을 내딛는지도 모른다.

 코옹코옹에 내려와 혼자서 영업을 이어가던 한나 씨에게 잠시라도 쉬고 오라 한다. 처음 해보는 일을 책임진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사실 익숙한 일을 책임지는 마음도 쉽지 않은데 오죽할까. 늦은 점심을 챙겨보려고 마음먹었다. 기왕이면 코옹코옹 홍보 사진 촬영하고 있는 은혜 씨와 쿵 씨가 촬영할 수 있는 접시를 만들어보려 세심하지 못한 손에 집중해 노력을 다해본다. 소스를 다 뿌리고 보니 핫도그처럼 샐러드 접시가 형형색색 소스로 가득하다. 촬영하는 동료들에게 접시를 순순히(?) 넘겨주고 촬영할 피자와 샌드위치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에 오븐을 켜고 맛있어지라는 주문을 외우며 하나씩 만들어간다. 마음을 가득 담았으니 안 먹어봤지만 분명 맛있었을 거다. 그리고 조용히 맥주 한 캔을 들고 와 사진 촬영이 끝난 샐러드 접시에 포크질을 했다. 정성을 다한 뒤 영업용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맥주가 얼마나 맛있는지, 다들 근무에 무리가 없다면, 혹은 퇴근하기 전에 코옹코옹 냉장고에서 쿵 씨와 명호 씨가 강진에서 가져온 카스 한 캔을 강력히 추천한다. 영업용 냉장고라 그런지 참 시원하다. (아! 저 카스는 얼른 먹어주었으면 좋겠다. 아마 영업용 냉장고에 들어있으면 안 되는 친구다.)

 샐러드바를 마감하고 산 같이 쌓인 설거지를 보니 막막함 뒤에 한숨, 그리고 짜증이 몰려온다. 이 또한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짜증은 잠시 밀어두고 고무장갑을 낀다. 사실 설거지 할 때 고무장갑 끼는 일을 별로 안 좋아한다. 고무장갑이 만드는 공백에 손의 감각이 무뎌지는 탓에 그릇이 확실히 닦였는지 확인이 어렵다. 그런데도 한번 하고 말 게 아니라 오래 해야 하니 고무장갑을 잘 챙기고 있다. 식기 세척기가 한 번, 마른행주로 동료가 한 번 더 확인하니 조금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따라 설거지가 많았다. 행주를 삶고 널어두기가 무섭게 오래된 피아노를 버리기 위해 옮겨야 했다. 물 먹은 피아노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피아노는 버릴 수 있는 곳에 놓였고, 이제는 어떻게 순환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전해질 것이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과 자원을 순환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순환하는 마음이 나중에 나에게 필요한 물건과 자원으로 돌아올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 가치 없는 존재는 없다고 믿으니 내 손을 떠나보내는 일이 쉽지 않다. 이 사실이 필요를 넘어 더 많이 가져야 하는 사람과 사회를 만들고 있다. 물 먹은 피아노는 어떻게 순환될 수 있을까? 적어도 순환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태워지거나 매립되고 있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고민하는 시점이 오면 분명 다음을 행동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동우 씨와 회의를 하고 명호 씨가 새벽 3시에 시켰다는 치킨을 함께 먹었다. 식사 중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하고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가능한 손을 더하고 싶다'는 혁진 씨 말에 큰 고마움을 느낀다. 그는 오늘 어지러운 수납장을 이야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바쁜 와중 시간을 내어 직접 정리해주었다. 그 마음이 참 고맙다. 말 한마디가 가지는 책임을 아는 사람의 존재만으로 힘이 된다. 세상에 쉬운 말은 많지만 쉬운 과정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몸소 배우고 있다.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말은 정말로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 쉬운 한 마디가 타인에게 폭력적인 상처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다짐한다. 쉽게 말하지 않고 행동으로 책임지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런 사람으로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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