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진]2019년 6월 17일 월요일 - 가지치기

김혁진
2019-06-17
조회수 1162

... 길었다.


사건의 발단은 작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처럼 한창 바쁘던 그때, 처음 보는 아저씨가 사무실로 찾아와 오르막길 나뭇잎 좀 치워달라고 했다.


무슨 소린가 알고 봤더니, 로라에 주인이 없어 방치되고 있던 때부터 지금까지 옆집 음식점 주인 아저씨가 나뭇잎 치우느라 고생 좀 하셨단다.


그 얘기를 들은 이후부터 틈틈이 청소를 해왔고 그간 큰 문제는 없었다. 적어도.. 올 4월까지는.


어느 날 옆집 음식점 주인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나무 좀 어떻게 해달라고 찾아왔다. 어라? 또? 청소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주인이 바뀌었단다. 대충 상황 설명을 하고 최소한의 액션을 보이기로 했다. 어.. 그땐 그랬다.


일단 손을 뻗어서 닿는 높이에 있는 가지를 싹 쳐냈다. 이것도 꽤 오래 걸렸다. 무식하게 손으로 톱 들고 자르는 꼴이라고는.. 뭐 별 수 있나. 벌목은 안 되는 상황이고 목포 인근에는 이런 작업을 의뢰할 만한 업체도 없고 신경은 쓰이고. 무식해도 직접 하는 수밖에.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이렇게 대충 끝내서는 내년은커녕 올 가을부터 상당히 고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깟 나무가 뭐라고, 내 신경을 할애하고 싶지도 않았고 옆집이랑 얼굴 붉히기도 싫었다.


고민했다. 어떻게 할까. 물어 봤다. 이렇게 하면 어때요? 답을 들었다. 무리하지 말고 해요. 그래서 가지를 쳐내기 시작했다. 틈틈이, 하염없이, 별의별 난리를 치며. 물론 몇 날 며칠 나무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른 업무와 병행하며 진행했다.


자르고


치우고


버리고


자르고


치우고


자르고


정리하고


치우고


비계 짜서


자르고


자르고


버리고


치우고


제 역할을 끝낸 비계는


털어서


정리하고


일단 여기까지. 징하게도 했다.


위험한 순간도 몇 번 있었다. 전기선에 그 무거운 나무 토막이 대롱 대롱 매달려 있을 땐 진짜 이러다 대형 사고 나는 거 아닌가 수명을 몇 년이나 갉아먹었는지 모른다. (사고가 안 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감사할 따름) 물론 인터넷선은 한번 끊어 먹었다. 아.. 약국에서 비타민 음료 사서 옆집에 찾아가 사과할 때는 정말 별 생각이 다 들었더랬다. 거기에 떨어지는 나무에 맞아 가로등 커버가 떨어지지를 않나. 후.. 릴랙스.


사실 성에는 다 안 찬다. 맨 안쪽 줄기를 제외한 나머지 줄기를 싹 다 쳐냈으면 참 좋겠다. 그런데 그놈의 선 선 선. 하늘을 가로질러 옆집 앞집 뒷집 얽히고 설킨 망할 선들. 몇 번 위기를 넘겼더니 이젠 할 엄두가 안 난다. 그래 그냥 쓸자. 뉴스에 나오지 말자.


원래 오늘 뒷정리까지 다 마칠 생각이었으나 평소와 다름 없이 이런 저런 일들이 생겨 마무리는 미뤄졌다..고 하지만 부지런히 또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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