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진]2019년 6월 20일 목요일 -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이

김혁진
2019-06-20
조회수 141

이곳에 첫 일기를 작성했을 때, '방문'이 '생활'로 바뀌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내일은 내 지난 방문의 근간이 되는 날이다. 결코 좋은 이유는 아니다. 친구의 기일(忌日)이니까.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다. 아마도 이젠 찾는 사람-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대학교 때 지인들-이 없을 것이라 확신하지만.. 적어도 난 지금까지 잊지 않았다. 잊을 수가 없었다.


난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함께 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 있을 때는 알리고 싶은 사람들도 많고 나누고 싶은 사람들도 많고 또 찾아주는 사람들도 많을 테니 굳이 내가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은 반대다. 가능하다면 잊지 않고 찾아가려 노력한다. 그 시기를 이겨나가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그대로 대우 받고 싶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마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수많은 것들에게 영향을 받은 결과겠지만,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고등학교 윤리 시간 때 배웠던 칸트의 정언명령이다.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
"네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인격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고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inyurl.com/y3wx5zgv)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만약 상대방이라면'이란 가정을 언제나 대전제로 삼고 대화하거나 행동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냥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편해서 그렇다. 때론 감정이 앞서 실수를 할 때도 많은데 그럴 때는 즉시 사과하고 바로잡으려고 매우 매우 노력한다. 피곤한 사람이다. 대추나무 한의원의 박사님이 나에게 항상 하시는 말씀이 떠오른다.


"너무 예민한 사람이야. 그런데 그렇게 일을 하고 있으니 몸이 못 버티지. 가뜩이나 시원찮은 사람이.."


그렇지만 나도 역시 사람인지라, 내가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에 대해 개의치 않는 사람들을 보면 멋대로 실망하기도 하고 때론 분노하기도 한다.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뜻의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일종의 명령문이다. 간극이 큰 견해차에 대해 서로 이해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맹자 이루(離婁)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 유래라 한다. 그러나 역지즉개연은 ‘처지나 경우를 바꾼다 하더라도 서로의 생각이나 행동이 같을 수밖에 없다’는 평서문이며, 견해차 없는 의사합치를 뜻한다. 그래서 엄밀히 역지사지와는 다른 뜻이다.

(출처: 경남신문 https://tinyurl.com/y6lss2vl)


그래, 어쩌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멋대로 역지사지를 강요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6월 21일을 기억하지 않는 다른 지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 싫었다.


내가 다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날이 내 삶을 강하게 흔든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어쩌면 이미 매일 접하고 있는 사건 중 하나일 테지만, 나에겐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었으니까.


돌이켜보면 이런 나의 가치관이, 그리고 이외에도 다양한 나의 가치관들이 쌓이고 쌓여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현실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얼마 남지 않은 휴가 중 하루를 썼다. 일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많은 것들을 잊어선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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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이루는 많은 세계 속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지 구분하는 일은 참 쉽지 않아요. 과연 우리는 어떤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지내야 할까요. 고민이 많이 드는 지점이에요. 흘러가는 것들 속에서 계속 고민을 해야겠죠. 적어도 가깝게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런 것들을 더 자주 떠올릴 수 있길 바라면서, 잠시 고민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