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첫 다이어리, 1월호는 병가일기로 돌아오겠다고 했는데요.
막상 쓰려고 사진첩을 보니 사진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번 호는 조금 짧겠군요.
그래도 있는 사진을 가지고 1월호를 작성해 봅니다.

2021년 1월 1일에는 요리사 없는 최소 한끼에서 냉장고를 털었습니다. 민지 주인장이 허락해주었어요.
친구들이 뚝딱뚝딱 솜씨를 부려 화려한 아침상이 차렸고, 행복하게 먹었습니다.
이쯤 되면 제 다이어리의 팔 할은 잘 먹고 다닌다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해요.

아침을 먹고 송미와 유달산 산책로를 걸었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미끄러웠지만, 손을 꼭 붙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걸었어요.
서로를 만날 수 있었던 지난해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평화롭고 고요한 시간이었어요.

눈 덮인 산은 정말 아름다웠고요.

근데 이건 눈사람인지 흙사람인지..?

그리고 첫 월요일에는 친구들과 도자기 굽는 빛살로 캠핑을 하러 갔습니다.
가자마자 바나나 버터구이를 구워 먹고 있는 모습입니다.
덕수의 젓가락질을 보는 강아지의 눈망울이 아련해요. 지금 내 마음과 같음. 맛있겠다..

야옹이는 관심이 없음.

(날 좀 봐줘)

처음 물레도 돌려보고, (선생님이 한두 개만 만들라고 했는데 다들 네 개 이상은 만들었음. )

(허리 똑바로 펴고 앉아라)

맛있는 캠핑 음식도 해 먹었습니다. 이때 먹었던 음식들은 다시 보아도 무야호입니다.

덕수는 필름카메라 사진을 많이 찍었던 것 같은데,

결과물이 너무나 기대됩니다.

친구들과 함께해서 무척 즐거운 1박 2일이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첫 출근을 했는데요.
역시나 눈이 무척 많이 왔습니다. 목포..이 눈의 나라야..
점심을 먹은 후에 눈사람을 만들었는데요. 문제의 그 눈사람입니다.

다음 날 출근을 했는데, 허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허리에서 팍! 하는 느낌과 함께, 엄청난 통증과 마비가 왔어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서 엉금엉금 기어가듯이 걸어 퇴근했습니다.
집에 가는 길은 보통 10분 걸리는데, 이날 40분 걸렸습니다. 조금 울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무 위에 눈이 얹힌 것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네요. 미래도 모르고 짜식..

하루종일 누워있었지만 허리는 나아지기는커녕, 통증은 점점 심해져만 갔습니다.
보양빌라 친구들은 모두 집을 비워서 저는 혼자 있어야만 했는데요.
거동이 어려운 데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추위가 엄청나게 심하고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식사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수도도 얼어버렸습니다. 씻을 물도, 마실 물도 없는 상황.
제 소식을 들은 송미가 서울에서 급하게 와주었습니다. 저를 위해서 음식을 포장해 와주었고요.
송미가 사 온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엉엉 울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송미는 사진을 찍었어요..
하지만 얼어버린 수도는 해결할 수 없었는데요.
혁진 씨께 해결책을 얻어보고자 연락을 드렸는데,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보양빌라에 달려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송미와 혁진 씨가 수도를 녹이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실 동안 저는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죄송하고, 또 감사했던 순간이었어요.

그러나 송미와 혁진 씨의 노력에도 언 수도는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혁진 씨네 집으로 피신했습니다.
허리 통증이 심해 혁진 씨네 집까지 가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린 것 같아요. 거의 기어가는 저를 송미가 많이 도와주고 배려해주었어요.
송미와 함께 도착한 혁진 씨네 집. 혁진 씨가 씻을 수 있도록 화장실을 빌려주었고, 저녁까지 차려주셨습니다.

이게 진수성찬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따뜻한 물로 개운하게 씻고 혁진 씨의 음식을 먹으니 정말 살 것 같더라고요.
허리는 아팠지만 송미, 혁진 씨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근데 정말 혁진 씨의 음식은 하나같이 다 맛있었습니다. 혁진 씨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그의 손은 대체..?
이 다이어리를 통해 다시 한번, 정말 감사했고 그날 해주신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to. 혁진 천사.
송미와 함께 혁진 씨께 이 은혜를 갚자고 다짐했었는데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혁진 씨!

그리고 다음 날, 저는 서울로 올라가 바로 입원을 했습니다.
동우 씨가 눈길을 헤치고 복대도 가져다주시고, 이어폰도 가져다주시고, 차로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셨던 것도 기억납니다.
추위에 빨개진 얼굴을 하고 보양빌라까지 달려와, 복대를 건네던 동우 씨의 얼굴이 생각나요. 동우 씨, 정말 감사했어요.
사실 입원한 첫날만 해도 너무 아프지만, 작년보다는 금방 낫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태가 저번보다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술을 받은 후에도 일주일이나 입원을 해야했어요.

너무 우울하고 불안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블랙보리를 구비해 둔 모습입니다.

그런데 병원 밥이 거짓말처럼 잘 나왔어요(?) 그것이 하나의 위안이었습니다(?)
덕분에 삼시 세끼를 맛있게,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누워 있기, 밥 잘 먹기, 약 잘 먹기, 링겔 잘 맞기, 잘 자기..뿐이었어요.

너무나 힘들어하는 저를 위해 송미가 서울까지 병문안을 와주었습니다.
송미는 저를 위한 성경 말씀을 읽어주었고,

당시 사정상, 보호자가 없었던 저를 위해 머리까지 감겨주었습니다.
송미에 대한 고마움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송미가 찍은 사진) 너무 시원했음. 진짜 진짜!

너무 심심했나 봅니다. 안 찍던 셀카를 찍었네..머쓱..
이 병원 환자복이 너무 예쁘지 않나요? 마음에 들어.
그런데 이것이 1월의 마지막 사진입니다.
저는 퇴원을 한 후, 서울에 있는 본가로 갔고 1월이 다 가도록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입원했던 척추 전문 병원을 거쳐, 대학 병원도 두 군데나 가보았는데요. 알고 보니, 일반적인 디스크와는 조금 다른 질환이었습니다.
병원에서도 약과 물리치료 외에는 특별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저는 그저 허리를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하루종일 누워있고)
통증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존치료라고 하더라고요. 이 과정은 너무나 무력하고, 너무나 힘들고, 너무나 괴로웠어요.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제가 허리 통증 때문에 입맛을 잃었고, 화장실을 가는 것도 어려웠고, 잠을 잘 때 무의식중의 뒤척임조차 허락되지 않았어요.
과연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목포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과연 내 허리는 낫기는 하는 걸까. 온갖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던 1월이었습니다.
그렇다면 2월에는 어땠냐고요?
그것은..월간보리 2월호로 돌아오겠습니다.
2021년 첫 다이어리, 1월호는 병가일기로 돌아오겠다고 했는데요.
막상 쓰려고 사진첩을 보니 사진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번 호는 조금 짧겠군요.
그래도 있는 사진을 가지고 1월호를 작성해 봅니다.
2021년 1월 1일에는 요리사 없는 최소 한끼에서 냉장고를 털었습니다. 민지 주인장이 허락해주었어요.
친구들이 뚝딱뚝딱 솜씨를 부려 화려한 아침상이 차렸고, 행복하게 먹었습니다.
이쯤 되면 제 다이어리의 팔 할은 잘 먹고 다닌다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해요.
아침을 먹고 송미와 유달산 산책로를 걸었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미끄러웠지만, 손을 꼭 붙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걸었어요.
서로를 만날 수 있었던 지난해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평화롭고 고요한 시간이었어요.
눈 덮인 산은 정말 아름다웠고요.
근데 이건 눈사람인지 흙사람인지..?
그리고 첫 월요일에는 친구들과 도자기 굽는 빛살로 캠핑을 하러 갔습니다.
가자마자 바나나 버터구이를 구워 먹고 있는 모습입니다.
덕수의 젓가락질을 보는 강아지의 눈망울이 아련해요. 지금 내 마음과 같음. 맛있겠다..
야옹이는 관심이 없음.
(날 좀 봐줘)
처음 물레도 돌려보고, (선생님이 한두 개만 만들라고 했는데 다들 네 개 이상은 만들었음. )
(허리 똑바로 펴고 앉아라)
맛있는 캠핑 음식도 해 먹었습니다. 이때 먹었던 음식들은 다시 보아도 무야호입니다.
덕수는 필름카메라 사진을 많이 찍었던 것 같은데,
결과물이 너무나 기대됩니다.
친구들과 함께해서 무척 즐거운 1박 2일이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첫 출근을 했는데요.
역시나 눈이 무척 많이 왔습니다. 목포..이 눈의 나라야..
점심을 먹은 후에 눈사람을 만들었는데요. 문제의 그 눈사람입니다.
다음 날 출근을 했는데, 허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허리에서 팍! 하는 느낌과 함께, 엄청난 통증과 마비가 왔어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서 엉금엉금 기어가듯이 걸어 퇴근했습니다.
집에 가는 길은 보통 10분 걸리는데, 이날 40분 걸렸습니다. 조금 울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무 위에 눈이 얹힌 것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네요. 미래도 모르고 짜식..
하루종일 누워있었지만 허리는 나아지기는커녕, 통증은 점점 심해져만 갔습니다.
보양빌라 친구들은 모두 집을 비워서 저는 혼자 있어야만 했는데요.
거동이 어려운 데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추위가 엄청나게 심하고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식사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수도도 얼어버렸습니다. 씻을 물도, 마실 물도 없는 상황.
제 소식을 들은 송미가 서울에서 급하게 와주었습니다. 저를 위해서 음식을 포장해 와주었고요.
송미가 사 온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엉엉 울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송미는 사진을 찍었어요..
하지만 얼어버린 수도는 해결할 수 없었는데요.
혁진 씨께 해결책을 얻어보고자 연락을 드렸는데,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보양빌라에 달려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송미와 혁진 씨가 수도를 녹이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실 동안 저는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죄송하고, 또 감사했던 순간이었어요.
그러나 송미와 혁진 씨의 노력에도 언 수도는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혁진 씨네 집으로 피신했습니다.
허리 통증이 심해 혁진 씨네 집까지 가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린 것 같아요. 거의 기어가는 저를 송미가 많이 도와주고 배려해주었어요.
송미와 함께 도착한 혁진 씨네 집. 혁진 씨가 씻을 수 있도록 화장실을 빌려주었고, 저녁까지 차려주셨습니다.
이게 진수성찬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따뜻한 물로 개운하게 씻고 혁진 씨의 음식을 먹으니 정말 살 것 같더라고요.
허리는 아팠지만 송미, 혁진 씨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근데 정말 혁진 씨의 음식은 하나같이 다 맛있었습니다. 혁진 씨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그의 손은 대체..?
이 다이어리를 통해 다시 한번, 정말 감사했고 그날 해주신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to. 혁진 천사.
송미와 함께 혁진 씨께 이 은혜를 갚자고 다짐했었는데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혁진 씨!
그리고 다음 날, 저는 서울로 올라가 바로 입원을 했습니다.

동우 씨가 눈길을 헤치고 복대도 가져다주시고, 이어폰도 가져다주시고, 차로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셨던 것도 기억납니다.
추위에 빨개진 얼굴을 하고 보양빌라까지 달려와, 복대를 건네던 동우 씨의 얼굴이 생각나요. 동우 씨, 정말 감사했어요.
사실 입원한 첫날만 해도 너무 아프지만, 작년보다는 금방 낫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태가 저번보다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술을 받은 후에도 일주일이나 입원을 해야했어요.
너무 우울하고 불안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블랙보리를 구비해 둔 모습입니다.
그런데 병원 밥이 거짓말처럼 잘 나왔어요(?) 그것이 하나의 위안이었습니다(?)
덕분에 삼시 세끼를 맛있게,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누워 있기, 밥 잘 먹기, 약 잘 먹기, 링겔 잘 맞기, 잘 자기..뿐이었어요.
너무나 힘들어하는 저를 위해 송미가 서울까지 병문안을 와주었습니다.
송미는 저를 위한 성경 말씀을 읽어주었고,
당시 사정상, 보호자가 없었던 저를 위해 머리까지 감겨주었습니다.
송미에 대한 고마움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송미가 찍은 사진) 너무 시원했음. 진짜 진짜!
너무 심심했나 봅니다. 안 찍던 셀카를 찍었네..머쓱..
이 병원 환자복이 너무 예쁘지 않나요? 마음에 들어.
그런데 이것이 1월의 마지막 사진입니다.
저는 퇴원을 한 후, 서울에 있는 본가로 갔고 1월이 다 가도록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입원했던 척추 전문 병원을 거쳐, 대학 병원도 두 군데나 가보았는데요. 알고 보니, 일반적인 디스크와는 조금 다른 질환이었습니다.
병원에서도 약과 물리치료 외에는 특별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저는 그저 허리를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하루종일 누워있고)
통증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존치료라고 하더라고요. 이 과정은 너무나 무력하고, 너무나 힘들고, 너무나 괴로웠어요.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제가 허리 통증 때문에 입맛을 잃었고, 화장실을 가는 것도 어려웠고, 잠을 잘 때 무의식중의 뒤척임조차 허락되지 않았어요.
과연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목포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과연 내 허리는 낫기는 하는 걸까. 온갖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던 1월이었습니다.
그렇다면 2월에는 어땠냐고요?
그것은..월간보리 2월호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