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7월 8일 기록 - 꼭꼭 씹기 먼저

덕수
2021-01-29
조회수 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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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정리하다 작년에 인애, 숙현이 진행했던 *엮기와 풀기 때 글을 꺼내 보게 됐다.
그중 내 시선에 걸린 7-8주 차 <구체적으로 말하기> 때 적었던 글 하나, 꼭꼭 씹기 먼저.



꼭꼭 씹기 먼저
: 삼킬지, 뱉을지는 씹어봐야 알지

명사 뒤에 동사를 더할 때 '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게 맞는지 고민한다. 모호하고 두루뭉술해서 내키지 않는달까. 내 기준 '말'은 '뱉다'란 동사와 잘 어울리는 거 같다. 나는 말을 뱉기 전 일단 꼭꼭 씹어 보는 편인데(장난칠 때 제외), 내 입안에서 맴도는 이 말을 삼킬지, 뱉을지 고민하며 씹어내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씹었을 때 위장 깊숙이까지 삼키고 싶은 말이 있고, 아무리 곱씹어도 뱉어내야만 하는 말이 있다. 씹지도 않고 삼키는 건 미련한 거 같고, 씹지도 않고 뱉어내는 건 대화를 나누는 상대에게 예의 없는 짓이란 생각이다.

말이란 음성 기호는 누군가의 생각, 의견, 가치관 따위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내뱉는 순간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만다. 그래서 나는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나열하는 단어가 많아질수록 오해의 소지가 커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가진 생각, 의견, 가치관 따위가 정당한지, 진실된 것들인지 곱씹어보다 말할 타이밍을 놓칠 때가 잦다.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 관계에서 더욱이 그렇다.

휘발도, 각인도 쉬운 말. 어렵다. 생각 없이 뱉은 말이 누군가의 머릿속 깊이 각인 되는, 오랜 시간 공들여 다듬어낸 말이 그 누구의 귀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가뿐하게 휘발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똑같은 단어를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걸 알고, 나조차도 그런 사람인 걸 인정하면서도 말이 오가는 상황에서 오해란 굴레로부터 완벽히 벗어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해서 해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현대에서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과정인데, 가끔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저렇게 말해?', '알아서 좋게 생각해주면 안 되나?', '이해할 마음이 있긴 할까? 왜 저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그런 면에서 구체적으로 말하기에 노력을 쏟기보다 꼭꼭 씹어낸, 어느 정도 정리된 말을 뱉은 뒤 그에 따른 상대의 반응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맞춰나가는 대화방식이 좀 더 맞겠다는 의견이다. 구체적이란 것도 결국엔 내 주관을 뛰어넘기 어려운 애니까.




나와 내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이 신뢰를 기반해, 자신만의 언어로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공유하고 펼쳐나갈 수 있음 좋겠다.
그러려면 나는 우선 체력부터 길러야겠다.



* 엮기와 풀기: 뜨개질을 배우며 글 쓰는 모임. 격주마다 뜨개 기술 하나씩을 배우고, 관련 주제로 글 한 편씩 써서 나눠 읽는 시간을 가졌다. 말 중심이 아닌 글과 뜨개질을 통해 여러 사람과 마주할 수 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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