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목포에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주로 혼자 일 하거나, 디자이너와 둘이 붙어 일했다. 다른 직원과 교류하고 협업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협업할 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홍보 영상에 모델로 세우기도 하고, 영상을 만들어야 하니 도와달라고 청하기도 했다. 마을에 있는 친구를 단기로 채용해 함께 팀을 이루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혼자 일했지만, 실은 혼자라고 느낄 틈이 별로 없었다. 혼자고 나발이고 일 쳐내기에 바빴기 때문일 거다.
그러다 팀이 생겼다. 기존에 있던 동료들과 한 팀을 이루게 되었다. 팀장님도 생겼다. 혼자서 고민하던 일을 함께 의논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동시에 마음을 다잡으며 함께 동기부여를 해내기도 했다. 든든한 내 편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그들은 든든한 내 편이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아주 잠깐, 썰물처럼 모두가 빠져나간 시기가 찾아왔다. 이 흐름에 함께 휩쓸려 나가려던 나는 어쩌다보니 홀로 남았다. 다시 혼자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처럼. 그러다 새로운 디자이너가 들어오면서, 또 디자이너와 둘이 붙어 일했다. 지난 시간이 마치 꿈처럼, 아니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처럼.
그러다 프리랜서로 함께 일할 동료가 생겼다. 그와 함께 일을 할 때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아, 이게 일하는 거지!'하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치열한 회의 끝에 디밸롭되는 아이디어, 구체적으로 쌓이는 결과물, 그 모든 것이 동료가 있어서 가능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새로운 동료가 들어왔고, 이번에는 내가 팀장이 되었다. 대학 생활과 사회 생활을 통틀어 리더가 된 적은 종종 있었지만, 이번에는 마음가짐이 아주 달랐다. 다시 동료를 잃고 싶지 않았다. 자의에 의해서인지, 타의에 의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꽤 무거운 중압감과 책임감에 짓눌려 지냈다.
그러나 일뿐만 아니라 마음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었기에 괴로워도 더 잘 해보고 싶다, 더 잘 해내고 싶다고 생각할 때 즈음 하나뿐인 팀원이 떠나게 되었고, 다시 혼자 남았다. 그맘때 (언제나 그랬듯이)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일들 투성이여서, 또 혼자고 나발이고 일 쳐내기에 바빴다.
다시 돌아와 지금, 나는 다시 팀장이고 그간 새로 조직에 합류해 나와 함께 팀이 된 동료들이 있다. 다시 팀장이 된 이유는 딱 하나,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나로 인해 팀원들이자 동료들이 정말 덜 힘들고, 더 효율적으로 일하게 되었는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내가 판단할 수 없다. 사실 나로서는 더 힘들어진 부분도 있지만...팀으로 일한다는 것 자체에 은은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동료가 필요하다고.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도 많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동료가 없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 더 많다고.
얼마 전에 영화 '슬램덩크'를 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책으로 열두번도 더 읽었던 만화라 영화에 그렇게 큰 감흥이 있겠나, 싶었는데 명작은 역시 명작이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
동료들과 응원단의 ‘뚫어’ 한 마디에 정말 사력을 다해 뚫고 나가는 송태섭을 보며, '동료'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와 함께했던 동료들, 나와 함께하지 않았어도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은 동료들, 그리고 나를 어떻게든 뚫고 나아가게 했던 동료들.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다들 각자가 원하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요즘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가끔은 이곳 생각이 날까? 나는 전과 현 동료들에게 어떤 동료로 기억되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떤 동료가 될 수 있을까, 또 어떤 동료를 만나게 될까...
혼자 사무실에 앉아 일하다 보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처음 목포에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주로 혼자 일 하거나, 디자이너와 둘이 붙어 일했다. 다른 직원과 교류하고 협업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협업할 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홍보 영상에 모델로 세우기도 하고, 영상을 만들어야 하니 도와달라고 청하기도 했다. 마을에 있는 친구를 단기로 채용해 함께 팀을 이루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혼자 일했지만, 실은 혼자라고 느낄 틈이 별로 없었다. 혼자고 나발이고 일 쳐내기에 바빴기 때문일 거다.
그러다 팀이 생겼다. 기존에 있던 동료들과 한 팀을 이루게 되었다. 팀장님도 생겼다. 혼자서 고민하던 일을 함께 의논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동시에 마음을 다잡으며 함께 동기부여를 해내기도 했다. 든든한 내 편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그들은 든든한 내 편이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아주 잠깐, 썰물처럼 모두가 빠져나간 시기가 찾아왔다. 이 흐름에 함께 휩쓸려 나가려던 나는 어쩌다보니 홀로 남았다. 다시 혼자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처럼. 그러다 새로운 디자이너가 들어오면서, 또 디자이너와 둘이 붙어 일했다. 지난 시간이 마치 꿈처럼, 아니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처럼.
그러다 프리랜서로 함께 일할 동료가 생겼다. 그와 함께 일을 할 때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아, 이게 일하는 거지!'하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치열한 회의 끝에 디밸롭되는 아이디어, 구체적으로 쌓이는 결과물, 그 모든 것이 동료가 있어서 가능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새로운 동료가 들어왔고, 이번에는 내가 팀장이 되었다. 대학 생활과 사회 생활을 통틀어 리더가 된 적은 종종 있었지만, 이번에는 마음가짐이 아주 달랐다. 다시 동료를 잃고 싶지 않았다. 자의에 의해서인지, 타의에 의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꽤 무거운 중압감과 책임감에 짓눌려 지냈다.
그러나 일뿐만 아니라 마음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었기에 괴로워도 더 잘 해보고 싶다, 더 잘 해내고 싶다고 생각할 때 즈음 하나뿐인 팀원이 떠나게 되었고, 다시 혼자 남았다. 그맘때 (언제나 그랬듯이)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일들 투성이여서, 또 혼자고 나발이고 일 쳐내기에 바빴다.
다시 돌아와 지금, 나는 다시 팀장이고 그간 새로 조직에 합류해 나와 함께 팀이 된 동료들이 있다. 다시 팀장이 된 이유는 딱 하나,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나로 인해 팀원들이자 동료들이 정말 덜 힘들고, 더 효율적으로 일하게 되었는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내가 판단할 수 없다. 사실 나로서는 더 힘들어진 부분도 있지만...팀으로 일한다는 것 자체에 은은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동료가 필요하다고.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도 많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동료가 없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 더 많다고.
얼마 전에 영화 '슬램덩크'를 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책으로 열두번도 더 읽었던 만화라 영화에 그렇게 큰 감흥이 있겠나, 싶었는데 명작은 역시 명작이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
동료들과 응원단의 ‘뚫어’ 한 마디에 정말 사력을 다해 뚫고 나가는 송태섭을 보며, '동료'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와 함께했던 동료들, 나와 함께하지 않았어도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은 동료들, 그리고 나를 어떻게든 뚫고 나아가게 했던 동료들.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다들 각자가 원하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요즘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가끔은 이곳 생각이 날까? 나는 전과 현 동료들에게 어떤 동료로 기억되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떤 동료가 될 수 있을까, 또 어떤 동료를 만나게 될까...
혼자 사무실에 앉아 일하다 보니, 별 생각이 다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