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3일 화요일 - 귤이나 까먹듯이

moto
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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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 위에 발을 딛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나 현실감이 없는 건 아마 고통을 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잊어야 버틸 수 있는 시간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잊었고,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대체로 구분하지 않고 잊어서 뇌가 맨들맨들해졌다.
그래서 이렇게 몸과 마음이 분리된 기분이 드는 걸까. 



이럴 때 정말 조심해야 한다. 발이 미끄러지면 자칫 불행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럴 바에 마음도 생각도 모두 비우고 허상 사이를 둥둥 떠다니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언젠가 현실 위에 두 발을 디디고 삶을 직시하게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이렇게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른 채로 하루를 마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단 몸을 떠나간 마음이 되돌아오면, 그제야 지난 시간을 찬찬히 돌아볼 것이다.
자책의 렌즈를 벗어던지고 잘한 것도 그렇지 못한 것도, 성공도 실패도, 웃음과 눈물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봐줄 것이다.
그제야 지난 1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겠지. 



지금은 그저 안 좋은 일을 귤 까먹듯 다 까먹고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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