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갑자기> 팀원들끼리 대면으로 회의를 했다. 다같이 모인 김에, 오랜만에 최소 한끼도 갔다. 명호 씨 찬스를 받아서, 메뉴를 전부 주문해봤다. 정말 전부 다, 맛있었다. 특히 뇨끼, 오랜만에 먹는 뇨끼가 너무 부드럽고 좋았다. 예전에 뇨끼를 먹으면 소화가 안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날 먹었던 뇨끼는 속이 편안했다. 왜일까?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식사 후 현진 님께 엄지를 척! 들어보였더니 현진 님도 같이 엄지를 척! 들어주셨다.
나오면서 지브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하늘을 보았다. 다같이 하늘을 보면서 사진을 찍기 바빴다.
드디어 공사가 끝난 근대역사관도 보았다. 이사한 이후로 거의 이쪽으로 가질 않아, 언제 공사가 끝난 건지도 알 수없지만. 이사하기 전, 이 동네에 살면서 마주쳤던 아름다운 풍경들. 그것이 일상이었던 그때가 아주 조금 그리워지기도 했다.
명호 씨를 칭찬 감옥에 가둔 날도 있었다. 동료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 것 같다.
사무실 3층에서 바라 본 목포의 하늘. 구름이 폭발하듯이 뭉개뭉개 피어올랐다. 그림 같은 하늘이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서울에 갔다.
엄마가 작은 텃밭을 가꾸고, 토마토를 키우고 있었다. 엄마가 키운 토마토는 달고 맛있었다.
가족들과 다같이 베트남 음식을 먹으러 갔다. 엄마가 베트남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알았는데, 아빠도 입에 맞으시는지 잘 드셔서 다행이었다. (현지의 맛이 물씬 느껴지는 음식점이었다.) 후식으로 베트남 커피를 처음 마셔보기도 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일 연락을 나누지만, 얼굴을 보고 함께 식사하며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애틋한 시간이었다.
그 주말을 보내고 목포로 돌아왔지만, 본가 침수 소식에 그 다음 주 주말에 또 서울에 갔다. 일주일만에 풍경이 달라진 본가, 표정이 달라진 가족들. 가족들을 도와 침수된 것들을 정리했다. 옆집 이웃이 밖에 나온 내 책들을 보고, '이 집에 박사가 사냐'고 하셨단다. 웃기면서, 슬펐다.
많은 짐이 침수되었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사진이 전부 다 젖어버렸다. 옷도 다시 살 수 있고, 책도 다시 살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은 어디서 다시 찍을 수도, 구할 수도 없는데. 앨범을 들출 수록, 가족들 입에서 연신 탄식이 흘렀다. 그나마 살릴 수 있는 것들을 한 장 한 장 앨범에서 분리하고 말렸다. 녹아버린 사진들에서 고약한 잉크 냄새가 진동했다.
아직 정리할 것이 많았지만, 다시 부모님께 맡겨둔 채로 목포에 돌아왔다. 고된 주말을 보내고 돌아온 목포에서 어김없이 출근한 어느 날.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바다를 보러 갔다. 정시 퇴근을 했더니, 일몰 시간이 맞아떨어져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었다.
바닷길을 걷다가,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에 맥주를 마셨다. 해가 다 떨어지고 하늘이 붉게 물든 모습이 장관이었다. 정말 별 것 아닌데, 별 것처럼 느껴지는 퇴근길이었다. 엄마는 종종 나에게 마음이 힘들면 바다를 보러 가라고 했다. 바다 옆에서 사는 특권이 아니겠냐며. 그러나 목포에서 살면서 퇴근 후 여유롭게 바다와 노을을 보러 갈 수 있는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밖에 비가 오는지, 땡볕인지도 모르고 일을 하는 날이 허다했다. 그러다보니 바다 옆에 살면서도, 이런 퇴근 후 일상은 별 것이 되어버렸다.
목포에 산지 3년 차인데, 이제서야 가보는 목포 국도 1호선 독립영화제. 올해 아니면 왠지 볼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마음 먹고 갔다.
이날도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이 있었다.
해가 다 떨어지고, 영화제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개막식 행사를 보고, 축하 공연도 보았다. 아름다운 밤하늘을 뒤로 하고, 울려펴지는 음악에 열심히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들었다. 열심히 환호했다. 엉덩이는 의자에 붙어 있었지만, 어쩐지 몸과 마음이 한결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짧은 영화 네 편을 보았다. 뒤에는 유람선이 지나가고, 바다가 언뜻언뜻 비치고, 또 밤이 깊어질 수록 반딧불이 날아다녔다. 도심에서 처음 보는 반딧불. 영화를 보다가 반딧불을 보다가, 영화를 보다가 또 반딧불을 발견했다. 그리고 의미 있는 영화들. 낭만적인 밤이었다.
가끔은 이런 파스타가 땡기는 날이 있다. 그냥 면을 삶고, 시판 토마토 소스를 부어 휘적휘적 만든 파스타. 이 단순한 맛이 주는 만족감이 필요한 날이 있다. 이 날이 그런 날이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토마토 파스타를 먹었다. 점심에는 혼자 만들어 먹고, 저녁에는 수연 씨가 만들어줬다. 그런데 똑같은 면, 똑같은 소스인데도 맛이 달랐다. 물론 저녁에 먹은 파스타가 더 맛있었다. 비결을 알려줬는데, 까먹었다. 그냥 또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원도심에 허트가 있어서 다행이다.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여전히 허트를 간다. 갈 때마다 항상 반갑게 맞아주시는 허트 사장님. 원두 어떤 것이 있냐 물으면, 있는 원두를 소개해주신 다음- 슬쩍 다음 주 원두도 꺼내서 내려주신다. 사장님 덕분에 다양한 원두로, 다양한 맛의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사실, 수연 씨가 반짝반짝 1번지 커피를 바꾼 이후로 평일에도 사무실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요즘. 수연 씨, 고마워요!
북교초를 하염없이 걸은 날도 있었다. 부모님과 통화를 했고, 무거워진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 리오와 연락을 했다. 다정한 대화에 무거워진 마음이 슬쩍 위로를 받았다. 1시간이 훌쩍 넘게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문득, 선선해진 밤공기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꼈다.
주말, 오랜만에 만난 정인이 나를 데리고 훌쩍 떠나주었다. 그렇게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정읍을 갑자기 가게 되었다.
정인이 늘 말했던 카페에 왔다. 이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보금이랑 같이 가고싶다'더니, 정말 날 데리고 왔다. 그 말을 할 때도 고마웠지만, 막상 진짜 같이 오니 더 고마웠다. 정인의 말처럼 이곳 커피는 너무나 맛있었다. 그러다 뜻밖의 선물도 받았다. 시집과 편지. 시집과 편지라니.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씹어 읽었다. 그러다 문득, 침수되어 젖어버린, 결국 정리할 수밖에 없었던 편지들이 생각났다. 그래도 또 편지를 받았다. 또 소중한 마음을 받았다.
그리고 선물 받은 시집을 읽었다.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시집도 읽히는 것 같다' 하니 정인도 맞다고 했다. 시집이 읽히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을 읽다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을 읽다가 했다.
그리고 다시 목포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윤슬이 빛나는 낯선 저수지를 발견했다. 차를 돌려, 잠시 멈춰 풍경을 감상했다. 저수지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선물 같은 주말, 선물 같은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리는 예전이랑 똑같네'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고 느끼는 요즘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예전같다'고 말하니, 안심되는 마음이 있었다. 무엇이 예전 같은지, 무엇이 똑같은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예전같다는 말이 마냥 좋은 말이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의 예전을 기억해주고 지금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편안하게 숨쉬게 했다.
집 근처에 도착해, 나를 데려다주고 멀어지는 차 뒷꽁무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운전석 밖으로 손이 쑥 나오더니, 정인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점점 작아지는 차, 여전히 흔들고 있는 손. 그 뒷 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서있었다. 문득, 목포에 처음 오던 날, 나를 데려다주고 차창 밖으로 손 흔들며 사라지던 오빠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겹쳐보이는 장면과 겹쳐지는 모습, 그리고 겹쳐지는 마음. 이번에는 우는 대신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있는 힘껏 살았고, 버텼던 8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
오랜만에 <갑자기> 팀원들끼리 대면으로 회의를 했다. 다같이 모인 김에, 오랜만에 최소 한끼도 갔다. 명호 씨 찬스를 받아서, 메뉴를 전부 주문해봤다. 정말 전부 다, 맛있었다. 특히 뇨끼, 오랜만에 먹는 뇨끼가 너무 부드럽고 좋았다. 예전에 뇨끼를 먹으면 소화가 안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날 먹었던 뇨끼는 속이 편안했다. 왜일까?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식사 후 현진 님께 엄지를 척! 들어보였더니 현진 님도 같이 엄지를 척! 들어주셨다.
나오면서 지브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하늘을 보았다. 다같이 하늘을 보면서 사진을 찍기 바빴다.
드디어 공사가 끝난 근대역사관도 보았다. 이사한 이후로 거의 이쪽으로 가질 않아, 언제 공사가 끝난 건지도 알 수없지만. 이사하기 전, 이 동네에 살면서 마주쳤던 아름다운 풍경들. 그것이 일상이었던 그때가 아주 조금 그리워지기도 했다.
명호 씨를 칭찬 감옥에 가둔 날도 있었다. 동료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 것 같다.
사무실 3층에서 바라 본 목포의 하늘. 구름이 폭발하듯이 뭉개뭉개 피어올랐다. 그림 같은 하늘이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서울에 갔다.
엄마가 작은 텃밭을 가꾸고, 토마토를 키우고 있었다. 엄마가 키운 토마토는 달고 맛있었다.
가족들과 다같이 베트남 음식을 먹으러 갔다. 엄마가 베트남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알았는데, 아빠도 입에 맞으시는지 잘 드셔서 다행이었다. (현지의 맛이 물씬 느껴지는 음식점이었다.) 후식으로 베트남 커피를 처음 마셔보기도 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일 연락을 나누지만, 얼굴을 보고 함께 식사하며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애틋한 시간이었다.
그 주말을 보내고 목포로 돌아왔지만, 본가 침수 소식에 그 다음 주 주말에 또 서울에 갔다. 일주일만에 풍경이 달라진 본가, 표정이 달라진 가족들. 가족들을 도와 침수된 것들을 정리했다. 옆집 이웃이 밖에 나온 내 책들을 보고, '이 집에 박사가 사냐'고 하셨단다. 웃기면서, 슬펐다.
많은 짐이 침수되었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사진이 전부 다 젖어버렸다. 옷도 다시 살 수 있고, 책도 다시 살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은 어디서 다시 찍을 수도, 구할 수도 없는데. 앨범을 들출 수록, 가족들 입에서 연신 탄식이 흘렀다. 그나마 살릴 수 있는 것들을 한 장 한 장 앨범에서 분리하고 말렸다. 녹아버린 사진들에서 고약한 잉크 냄새가 진동했다.
아직 정리할 것이 많았지만, 다시 부모님께 맡겨둔 채로 목포에 돌아왔다. 고된 주말을 보내고 돌아온 목포에서 어김없이 출근한 어느 날.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바다를 보러 갔다. 정시 퇴근을 했더니, 일몰 시간이 맞아떨어져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었다.
바닷길을 걷다가,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에 맥주를 마셨다. 해가 다 떨어지고 하늘이 붉게 물든 모습이 장관이었다. 정말 별 것 아닌데, 별 것처럼 느껴지는 퇴근길이었다. 엄마는 종종 나에게 마음이 힘들면 바다를 보러 가라고 했다. 바다 옆에서 사는 특권이 아니겠냐며. 그러나 목포에서 살면서 퇴근 후 여유롭게 바다와 노을을 보러 갈 수 있는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밖에 비가 오는지, 땡볕인지도 모르고 일을 하는 날이 허다했다. 그러다보니 바다 옆에 살면서도, 이런 퇴근 후 일상은 별 것이 되어버렸다.
목포에 산지 3년 차인데, 이제서야 가보는 목포 국도 1호선 독립영화제. 올해 아니면 왠지 볼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마음 먹고 갔다.
이날도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이 있었다.
해가 다 떨어지고, 영화제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개막식 행사를 보고, 축하 공연도 보았다. 아름다운 밤하늘을 뒤로 하고, 울려펴지는 음악에 열심히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들었다. 열심히 환호했다. 엉덩이는 의자에 붙어 있었지만, 어쩐지 몸과 마음이 한결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짧은 영화 네 편을 보았다. 뒤에는 유람선이 지나가고, 바다가 언뜻언뜻 비치고, 또 밤이 깊어질 수록 반딧불이 날아다녔다. 도심에서 처음 보는 반딧불. 영화를 보다가 반딧불을 보다가, 영화를 보다가 또 반딧불을 발견했다. 그리고 의미 있는 영화들. 낭만적인 밤이었다.
가끔은 이런 파스타가 땡기는 날이 있다. 그냥 면을 삶고, 시판 토마토 소스를 부어 휘적휘적 만든 파스타. 이 단순한 맛이 주는 만족감이 필요한 날이 있다. 이 날이 그런 날이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토마토 파스타를 먹었다. 점심에는 혼자 만들어 먹고, 저녁에는 수연 씨가 만들어줬다. 그런데 똑같은 면, 똑같은 소스인데도 맛이 달랐다. 물론 저녁에 먹은 파스타가 더 맛있었다. 비결을 알려줬는데, 까먹었다. 그냥 또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원도심에 허트가 있어서 다행이다.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여전히 허트를 간다. 갈 때마다 항상 반갑게 맞아주시는 허트 사장님. 원두 어떤 것이 있냐 물으면, 있는 원두를 소개해주신 다음- 슬쩍 다음 주 원두도 꺼내서 내려주신다. 사장님 덕분에 다양한 원두로, 다양한 맛의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사실, 수연 씨가 반짝반짝 1번지 커피를 바꾼 이후로 평일에도 사무실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요즘. 수연 씨, 고마워요!
북교초를 하염없이 걸은 날도 있었다. 부모님과 통화를 했고, 무거워진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 리오와 연락을 했다. 다정한 대화에 무거워진 마음이 슬쩍 위로를 받았다. 1시간이 훌쩍 넘게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문득, 선선해진 밤공기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꼈다.
주말, 오랜만에 만난 정인이 나를 데리고 훌쩍 떠나주었다. 그렇게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정읍을 갑자기 가게 되었다.
정인이 늘 말했던 카페에 왔다. 이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보금이랑 같이 가고싶다'더니, 정말 날 데리고 왔다. 그 말을 할 때도 고마웠지만, 막상 진짜 같이 오니 더 고마웠다. 정인의 말처럼 이곳 커피는 너무나 맛있었다. 그러다 뜻밖의 선물도 받았다. 시집과 편지. 시집과 편지라니.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씹어 읽었다. 그러다 문득, 침수되어 젖어버린, 결국 정리할 수밖에 없었던 편지들이 생각났다. 그래도 또 편지를 받았다. 또 소중한 마음을 받았다.
그리고 선물 받은 시집을 읽었다.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시집도 읽히는 것 같다' 하니 정인도 맞다고 했다. 시집이 읽히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을 읽다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을 읽다가 했다.
그리고 다시 목포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윤슬이 빛나는 낯선 저수지를 발견했다. 차를 돌려, 잠시 멈춰 풍경을 감상했다. 저수지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선물 같은 주말, 선물 같은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리는 예전이랑 똑같네'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고 느끼는 요즘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예전같다'고 말하니, 안심되는 마음이 있었다. 무엇이 예전 같은지, 무엇이 똑같은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예전같다는 말이 마냥 좋은 말이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의 예전을 기억해주고 지금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편안하게 숨쉬게 했다.
집 근처에 도착해, 나를 데려다주고 멀어지는 차 뒷꽁무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운전석 밖으로 손이 쑥 나오더니, 정인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점점 작아지는 차, 여전히 흔들고 있는 손. 그 뒷 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서있었다. 문득, 목포에 처음 오던 날, 나를 데려다주고 차창 밖으로 손 흔들며 사라지던 오빠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겹쳐보이는 장면과 겹쳐지는 모습, 그리고 겹쳐지는 마음. 이번에는 우는 대신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있는 힘껏 살았고, 버텼던 8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