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공장]2018년 6월 28일 목요일 - 목포에 대하여

송영재
2018-06-30
조회수 421

오전ᆢ

난 4년차 커피중독자다. 회사생활 속 몇안되는 낙이기에. 회사가 아닌 목포에서의 첫아침, 평소처럼 진한 커피가 생각났다.

오전에 뭐할지에 대한 계획은 없었기에, 동우형에게 원두가 맛있는 커피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인스파이어와 홈보인가를 추천해줘서 갈팡질팡했다. 그러던 중 영상 작업하시는 유지씨가 왔다. 조건 하나를 더 달았다. 원두가 맛있고 비오는 풍경이 좋은 곳 추천해달라고 했다. 마부를 추천해주시며 '초원빌라'를 찍고 찾아가라는 팁도 주셨다.

마부로 향했고, 비가 내려서 버켄스탁이 다 젖었다. 마부에 도착했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다행히 마부 창밖으로 비를 피할수있는 벤치가 있었다. 어디선가 커피를 사와서 비구경 하면서 마시면 되겠다 싶었다. 근처에 세븐일레븐이 있길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다가 마부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마침 비가 그쳤고 커피는 정말 맛이 없었다. 버켄스탁도 젖었다. 물에젖은 저 쓰레빠에서 냄새가 나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다. 운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후1ᆢ

종가집이라는 곳에서 업무차 서울에서 내려오신 문성호 사무관님, 공장공장 직원및지인분들과 점심으로 청국장을 먹었다. 최근에 건강 회복에 대해 관심이 많은터라, 잘됐구나 싶었다. 한편으론, 소개팅 첫만남으로 청국장집에 갔다고 주선자에게 한소리들은 두달전쯤의 소개팅이 생각났다. 전날 집들이갔다가 탈이나서 된장국같은거만 먹을수 있다고 하는 소개팅녀를 위해, 만나기로 약속한 양재동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청국장집을 찾고찾아서 간거였는데, 왜 한소리를 들었는지 도통 알수없었던 그 소개팅때의 추억과 겹쳐져서 기분이 묘했다.


오전에 먹지 못한 맛있는 커피가 생각났다. 공장공장 근처에 외관이 맘에 쏙들었던 카페가 떠올랐다. 슬렁슬렁 목포 시내좀 구경하며 커피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슬렁슬렁 향한곳은 목포항동시장이었다. 난 원래 마트와 시장을 좋아하기에 당연한 코스였다. 


목포역에서 항동시장까지 수많은 OO장들을 지나쳤다. 이곳에 얼마나 많은사람들이 스쳐갔기에 이리 많은 여관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고, 그 상상속의 이미지와는 달리 거리가 너무 한산해서 놀랐다. 길을 지나며 플라스틱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바깥을 멀뚱멀뚱 내다보고 계시던 할머니들이 눈에 밟혔다. 잘은 몰라도 왠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 자리에 계실것 같은 느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거리와 그들이 사라진 거리에 대한 추억을 갖고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오지 않을 그 추억을 기다리고 계신 느낌이어서 맘이 짠했다.


항동시장에 도착했고 기억에 남는 것은 크게없었다. 근데 왠지모르게 언젠간 사라질 역사를 직접 보고있는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알고있는 시장은 사람이 모이는곳이다 물건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 내가 찾은 그 시장은 일방적이었고, 그래서 곧 끝날것같았다 일방적인 연애가 그러하듯. 


이어서 들른 여객터미널에는 사람이 1명 있었다. 출항하는 배가 없는 시간대였기에 당연한거였겠지만, 왠지 ‘폐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목포 인근의 수많은 섬을 잇는 역할을 하는 곳일텐데. 폐쇄적이기보다는 조금 더 개방적이고 역동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의 적막을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역동적인 서울에서 두통의 업무연락이 왔고, 20분 넘게 업무처리를 했다. 역동적인 것도 역동적이지 않은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


오후2ᆢ

갈증이 났다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나의 삶에도 그랬고, 오전에 결국 마시지 못한 맛있는 커피에도 그랬다.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서 공장공장 근처에 외관이 너무 이뻤던 카페로 향했다. 그러던 중, 공장공장에서 공간을 디자인한다던 아영씨와 창원에서 올라온 민주씨를 만났다. 마을 구경시켜준다기에 나도모르게 따라나섰다.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계시는 할머니들을 지났고, 사람이 그리웠는지 우리의 인기척에 담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진돗개 2마리도 지났다. 정겨운 풍경들이다. 그리고 SM연습생출신 사장님이 운영하신다는 능소화도 지났다. 멀리서 바라본 뒷모습에서 훈남의 포스가 느껴졌다.


그렇게 난 아무생각이 없던 중 구목포영사관이라는곳에 도착했고 아영씨가 그곳에 대해 설명해줬다. 여객터미널에서 한길로 이어지게 설계됐으며, 쓰나미의 충격에 대비하여 커브를 한번 틀었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인들은 어떤 면에서 참 대단하다고 느꼈고 배울게 많다고 느꼈다. 나도 이제 30대고 즉흥적이던 20대떠와는 달리 더 계획적이어야 하고, 실패의 확률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공장공장 사람들의 마음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지 못하는 나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그곳에서 아영씨와 헤어지고 민주씨와 노적봉에 올랐다. 목포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졌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기어 더할나위 없이 좋았지만, 캔맥주를 사오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드디어 커피를 마시러 발걸음을 옮겼다. 외관이 맘에 쏙 들었던 카페의 이름은 ‘손소영갤러리’였다. 그곳은 외관만큼이나 내관도 이뻤다. 내 취향인 외관만큼이나 내관 또한 내 취향은 아니었는데, 손소영 갤러리장님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메뉴를 보기도 전에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메뉴를 정했는데, 하우스와인을 마시겠다는 민주씨 말에 금새 생각이 바뀌었다. 난 커피보다 와인을 더 좋아하기에 민주씨에게 한입만 달라고 할것 같은데, 차마 그러지 못할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드와인 2잔을 시켜 테라스에서 마셨고 여러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민주씨가 내가 5년전쯤 머물다 온 지중해섬 몰타에 갈 계획이 있다고 얘기해서 몹시 반가웠다. 추억을 공유할수 있다는 것은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추억을 공유할수 있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얼마나 슬플까 하고 생각했고, 낮에 지나친 할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결국 맛있는 커피는 마시지 못했고, 그것에 대한 결핍은 느끼지 못했다. 나는 와인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와인은 이야기를 빚어내는 술이어서다. 누군가와 이야기꽃을 피울수 있는 기회에 대한 결핍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어서 와인에 대한 애착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생각을 비우려고 찾아온 목포에서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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