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나서 조금 명확해진 것이 있다.
중요하지 않은 것, 비본질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고
진짜 나에게 중요한 것,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자는 마음이 분명해졌다.
누군가의 장례식에 다녀왔을 때 느꼈던 마음과는 조금 달랐다.
짧게나마 죽음의 공포를 체험하고 나니 뼛속까지 생각이 스며들어 단단해졌다.
그리하여 조금은 성장했고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으로 매일 글을 조금씩 쓰려고 한다.
어제도 에버노트에 짧게 글을 남겼다. 그러다가 지난 기록을 들추게 되었다.
기록이 좋은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잊고 있던 생각과 깨달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다시 한번 이마를 탁 치게 하는 메모를 만났다.
브랜드를 소개하는 <매거진 B>에서 나온 단행본 시리즈의 첫 번째 책 <잡스: 에디터>를 읽으며 남긴 메모였다.
다른 에디터들의 인터뷰도 좋았지만, 프롤로그의 발행인 인터뷰가 무척 인상 깊었다.
업의 본질에 대해, 에디터에 대해, 삶의 태도에 대해 참고할 깊이 있는 인사이트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멘토를 만난 것처럼 밑줄을 그었고 메모를 남겼다. 그 메모가 지금의 나에게 다시 한번 영감이 되어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밑줄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 시대의 직업은 '전문가'나 '타고난 재능', '돈벌이'로 설명하기에 부족합니다. 직업과 일의 재정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일의 형태나 범위, 고용의 양상 등도 시시각각으로 변화합니다. 이처럼 불안정성과 유동성이 시대를 지배할 때야말로 일에 대한 주체적 해석이 필요할 것입니다.
처음부터 삶과 일이 일치하는 직업을 택한 '운 좋은 사람'도 분명 존재하지만 많은 경우는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자신의 길을 알아봅니다. 음악가로 활동하다 커피하우스를 연 블루보틀커피의 창립자가 그랬듯 삶의 플랜B, 플랜C는 플랜A보다 더 중요한 모멘텀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 직업이란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 즉 말 그대로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지 하는 정체성에 가깝다고 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인정이라는 사회적 효용의 관점에서 직업을 볼 수도 있고, 누군가가 세운 룰에 따라 직업이 규정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나 자신의 존재 의미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해요. (중략) 자신의 정체성이 일을 통해 뚜렷해진다면 의외로 돈을 버는 일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잘한다는 말도 일견 맞지만 그 이상으로, 좋아하려고 애를 쓰는 것도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거나 '왜 나는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지?'라고 하며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물어봐요. "무엇을 좋아하려고 얼마나 노력해봤느냐고"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건 제 발로 걸어오는 게 아니고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더 많이 더 세심하게 보려고 애써야 생기는 겁니다.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더 많이 보이게 되는 게 있어요. 남들과 똑같은 걸 봤는데 다른 게 보이는 거죠.
* Q. 이 시대 직업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뭘까요?
글쎄요. 소명의식이 아닐까요. 무엇 때문에 내가 이것을 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라고 하면, 보통은 돈을 벌어서 먹고살아야 하니까라고 대답할 것 같은데요. 세상 속에서 내 역할은 이거다라고 존재의 의미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건강한 삶이 가능하고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그렇게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잘 돼요.
*전 에디팅이 곧 크리에이티브와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보통 창조한다, create라는 것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걸로 많이 생각을 하는데 진짜 크리에이티브는 에디팅이라는 행위를 통해 나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 관점에서는 에디터=크리에이터라고 볼 수도 있어요. 최종적으로 구현할 상을 두고 에디팅을 통해 그 상을 구현해내는 사람? 크리에이터라고 부르기는 모호하니 에디터라고 부르는 것일 뿐이죠.
*에디팅을 크리에이팅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일단 무언가를 알아야 거기서 끌어올 수가 있는 거잖아요. 무언가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 즐거움이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걸 호기심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결국 많은 기회가 생겨나면서 직업에 접근하는 방식까지 바꿔놓은 것 같습니다. 일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을 벌일 무대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중략)
누군가에게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꽤 바람직해진 거죠. 반면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콘텐츠가 괜찮아야 해요. 예전에는 매스 미디어의 공신력이 괜찮지 않은 것도 괜찮은 걸로 만들어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오늘날에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나'를 괜찮게 보는 이들을 확보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어쩌면 안 괜찮아도 되는 거에요. 결국 개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슈로 귀결되는 거고, 내가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만 명확하게 전달하면 모든 것이 풀리는 거죠. 모든 일의 원점인 '나는 어떤 사람이냐'라는 것. 그것이 성패를 가르는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미디어의 본질에 더 가까워진 셈입니다.
아프고 나서 조금 명확해진 것이 있다.
중요하지 않은 것, 비본질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고
진짜 나에게 중요한 것,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자는 마음이 분명해졌다.
누군가의 장례식에 다녀왔을 때 느꼈던 마음과는 조금 달랐다.
짧게나마 죽음의 공포를 체험하고 나니 뼛속까지 생각이 스며들어 단단해졌다.
그리하여 조금은 성장했고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으로 매일 글을 조금씩 쓰려고 한다.
어제도 에버노트에 짧게 글을 남겼다. 그러다가 지난 기록을 들추게 되었다.
기록이 좋은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잊고 있던 생각과 깨달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다시 한번 이마를 탁 치게 하는 메모를 만났다.
브랜드를 소개하는 <매거진 B>에서 나온 단행본 시리즈의 첫 번째 책 <잡스: 에디터>를 읽으며 남긴 메모였다.
다른 에디터들의 인터뷰도 좋았지만, 프롤로그의 발행인 인터뷰가 무척 인상 깊었다.
업의 본질에 대해, 에디터에 대해, 삶의 태도에 대해 참고할 깊이 있는 인사이트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멘토를 만난 것처럼 밑줄을 그었고 메모를 남겼다. 그 메모가 지금의 나에게 다시 한번 영감이 되어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밑줄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 시대의 직업은 '전문가'나 '타고난 재능', '돈벌이'로 설명하기에 부족합니다. 직업과 일의 재정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일의 형태나 범위, 고용의 양상 등도 시시각각으로 변화합니다. 이처럼 불안정성과 유동성이 시대를 지배할 때야말로 일에 대한 주체적 해석이 필요할 것입니다.
처음부터 삶과 일이 일치하는 직업을 택한 '운 좋은 사람'도 분명 존재하지만 많은 경우는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자신의 길을 알아봅니다. 음악가로 활동하다 커피하우스를 연 블루보틀커피의 창립자가 그랬듯 삶의 플랜B, 플랜C는 플랜A보다 더 중요한 모멘텀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 직업이란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 즉 말 그대로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지 하는 정체성에 가깝다고 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인정이라는 사회적 효용의 관점에서 직업을 볼 수도 있고, 누군가가 세운 룰에 따라 직업이 규정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나 자신의 존재 의미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해요. (중략) 자신의 정체성이 일을 통해 뚜렷해진다면 의외로 돈을 버는 일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잘한다는 말도 일견 맞지만 그 이상으로, 좋아하려고 애를 쓰는 것도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거나 '왜 나는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지?'라고 하며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물어봐요. "무엇을 좋아하려고 얼마나 노력해봤느냐고"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건 제 발로 걸어오는 게 아니고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더 많이 더 세심하게 보려고 애써야 생기는 겁니다.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더 많이 보이게 되는 게 있어요. 남들과 똑같은 걸 봤는데 다른 게 보이는 거죠.
* Q. 이 시대 직업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뭘까요?
글쎄요. 소명의식이 아닐까요. 무엇 때문에 내가 이것을 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라고 하면, 보통은 돈을 벌어서 먹고살아야 하니까라고 대답할 것 같은데요. 세상 속에서 내 역할은 이거다라고 존재의 의미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건강한 삶이 가능하고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그렇게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잘 돼요.
*전 에디팅이 곧 크리에이티브와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보통 창조한다, create라는 것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걸로 많이 생각을 하는데 진짜 크리에이티브는 에디팅이라는 행위를 통해 나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 관점에서는 에디터=크리에이터라고 볼 수도 있어요. 최종적으로 구현할 상을 두고 에디팅을 통해 그 상을 구현해내는 사람? 크리에이터라고 부르기는 모호하니 에디터라고 부르는 것일 뿐이죠.
*에디팅을 크리에이팅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일단 무언가를 알아야 거기서 끌어올 수가 있는 거잖아요. 무언가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 즐거움이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걸 호기심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결국 많은 기회가 생겨나면서 직업에 접근하는 방식까지 바꿔놓은 것 같습니다. 일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을 벌일 무대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중략)
누군가에게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꽤 바람직해진 거죠. 반면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콘텐츠가 괜찮아야 해요. 예전에는 매스 미디어의 공신력이 괜찮지 않은 것도 괜찮은 걸로 만들어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오늘날에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나'를 괜찮게 보는 이들을 확보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어쩌면 안 괜찮아도 되는 거에요. 결국 개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슈로 귀결되는 거고, 내가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만 명확하게 전달하면 모든 것이 풀리는 거죠. 모든 일의 원점인 '나는 어떤 사람이냐'라는 것. 그것이 성패를 가르는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미디어의 본질에 더 가까워진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