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오기까지

리오
2019-03-18
조회수 1701

내가 무언가에 목을 맬 때마다 엄마가 하던 이야기가 있다.

리오야. 지금은 그게 전부인 것 같지만, 나중엔 아닐 거야.


지나고 보면 맞는 말이었다.


치른 시험 중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던 수능이 끝났을 때

작가가 되겠다고 대만 일본 프랑스에 사진을 걸 때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졌을 때

퇴사를 할 때


이곳에 못 다 적는 일이 일어났을 때에도

나는 매번 세상이 무너진 듯 괴로워했다.


알다시피, 지금은 별일이 아니다.


아무튼.


괜찮지 않아서 목포에 왔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이곳에서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빈집이고 구도심이고 별 관심도 없었다.

나는 그냥 6주간 바닷가가 있는 곳에서 쉬고 싶었다.

출퇴근 길에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상상을 그만하고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녀오겠다

이야기했다.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한 한나 씨와 빵실하게 웃는 나)

(나중에 한나 씨에게 곡의 이름을 물어봤을 때에 그런건 없고 리오씨가 보고 있어서 그냥 쳤다고 대답했다)


(넘나 사랑하는 일화 씨)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


울고 웃던 시간


진짜 마지막 밤.


이날 굉장한 용기를 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무엇이든 못하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는 게 매우 싫다..

노래도 그렇다.

괜히 오그라들고 부끄럽고 그렇다.. (그래서 노래방에서 노래 절대 안 부름)

노래를 번갈아가면서 부르는 분위기라 나는 내 차례가 될 때 숙소로 도망갔다.


방에서 후회를 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

도망친 게 부끄러워서 고민을 하다 다시 로라로 돌아갔다.

그렇게 몇 년 만에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여전히 부끄럽고 오그라드는 기억이지만,

내게는 작년에 했던 결심 중 가장 큰 것이었다. (ㅎㅎㅎ)


그렇게 우리의 6주는 끝나가고 있었다.


모아둔 돈이 떨어져갔다.

애초에 많은 돈이 아니었으니 오래 버틸 수 없었다.

공장공장은 지역 축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재밌는 일을 해보기 위해 마케터 겸 셀러로 참여했다.


집을 옮기기로 결정한 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본 첫 노을.


괜찮아마을 2기가 시작되기 전,

공장공장에서 <매거진섬>을 만들 사람들을 구한다고 들었다.

1기 에디터 활동을 함께한 일화, 담담, 샐리와 <매거진섬> 2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사업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츤츤, 나현, 나, 종혁

종혁 씨는 개인 작업에 힘을 쏟기로 했다.

여섯 명으로 시작했던 팀이 네 명으로 확정되었고,

이제 츤츤과 나현, 나만 남았다.

우리는 마음목욕탕이라는 공간을 만든다. 

목욕탕에는 세신사가 있다. 

우리는 마음을 씻어주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세심사가 되기로 했다.


사아실 나는 아직까지 이 동네에 큰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늦은 시간에 집을 가면 무섭다. (어디에 살든지 그러겠지만)

그럼에도 누군가가 쫓아올 때 집 대신 들를 곳이 있는 것.

연락을 하면 당장 뛰쳐나올 사람이 있다는 것.

이것들이 나를 덜 두렵게 만든다.


이곳에 오기까지.

츤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이러려고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라고 되뇌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이제야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삶은 무엇이다 같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결정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은 두렵지만, 주체적인 삶은 살아가는 데에 큰 활력을 준다.


이곳에 오기까지.

지금 이 시간을 만들어준 모든 우연에 감사하다.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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