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다니냐, 그리고 괜찮아마을 3기가 끝났다.

부또황
2019-12-04
조회수 1178


밥은 먹고 다니냐, 그리고 괜찮아마을 3기가 끝났다. 



프로젝트가 끝나서 하게 된 기록인데 마음 얘기만 잔뜩 써버렸다. 하하; 

다음 프로젝트는 업무에 대해서도 잘 써볼게요. 미안합니다.







나는 밥은 먹고 다니냐 전 편집장이었다.

근데 무슨 편집장이 편집 권한이 전혀 없었다.


“쉽게 읽히는 책으로 만들어주세요. 매거진 CRACKER YOUR WARDROBE처럼.”

“괜찮아마을의 모든 것을 다루는 책으로 갑시다. 매거진 B처럼.”

“오 이거 괜찮다. 매거진 VENUE!”


마음을 다해 만든 책이 투자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계속 변형됐다.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내게 책을 지킬 능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이미 펀딩이 시작됐고 사람들이 책을 샀고 책 발송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정말 이제는 더는 목차를 바꿀 때가 아니라 책을 마무리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고

약속을 받아내다시피 최종 기획을 확정했다. 

그러나.. 마지막 약속마저 엎어졌다.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8월 19일에 면담을 통해 

편집장 자리를 명호 씨에게 온전히 내어드렸다.


모든 걸 쏟았던 일이 처참하게 망가지고 나니 나도 망가져 버렸다.

자꾸 자책하게 됐고 안 좋은 생각만 하게 됐고 자꾸 울게 됐다.

하지만 바쁘게 굴러가는 회사 특성상 쉬지 못하고 바로 지방에서 왔습니다에 투입됐고

행사가 끝나자마자 잠시 휴가를 다녀오니 괜찮아마을 3기 운영팀으로 배정되어 있었다.


괜찮아마을 운영이라.. 관심가는 업무였지만 너무나도 빡센 업무임이 자명하여..

회복되지 않은 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나뿐 아니라 주변 모든 이들도 걱정했다.

2기를 운영했던 연진과 단열의 초점없는 눈, 움푹 패인 볼과 슬픈 웃음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니까.

나도 그들처럼 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딱 두 달만 참아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가혹한 업무에 밤낮없이 주말도 없이 달려야 했던 나는 금세 축났다.

게다가 주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영범 씨를 보면 

밥은 먹고 다니냐를 지킬 수 없던 내가 떠올라 속이 말이 아니기도 했다.


일만 생각하며 버티다 보니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퇴근길에 그냥 갑자기 눈물이 터지기도 했고, 너무 힘들고 답답한데 눈물이 나오지 않기도 했다.

아.. 진짜 이제 더는 안되겠다. 진짜 사람 잡겠다.

이렇게 나도 앞 기수 운영팀처럼 이곳을 떠나게 되겠구나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안 들리고 보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프로그램 막바지에 다행이네요 영화 GV에서 명호 씨가 우는 걸 보고 눈물이 터졌다.

명호 씨는 영범 씨와 일화 씨가 이곳에 남는 게 더 중요해요. 라며 울었다.

솔직히 나는 그와 일하는 게 너무 힘들다.. 머리통을 막 때리고 소리를 지르는 꿈도 몇 번이나 꿀 만큼.

그런데 그날은 짜증나게시리 같이 눈물이 났다.

그 복잡한 심경을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그냥 눈물이 났다.


모든 것이 끝나고 지난 주말, 몇 달 만에 술을 먹었다.

나는 분명 이곳을 사랑하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현타오는 퇴근길

그 새벽에 전화해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게 참 외롭다고 말하는 나에게 

은혜가 “나한테 해!”라고 말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럴 수는 없다고 대답했더니

“그럼 한 번은 나한테 하고 한 번은 지수한테 해!”라고 말하는 그.

얼마 전에 같은 얘기를 하는 나에게 인애 씨는 “저 새벽 늦게까지 안 자요.”라고 했고

리오 씨는 그냥 말없이 나를 안아줬고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줬다.

퇴근길에 울고 있는 나를 우연히 발견해 버린 동우 씨는 계속 어쩔 줄 몰라하며 쫓아왔고 힘들면 이야기하자고 여러 번 말했다.


.. 꽁꽁 닫힌 마음 녹이는 인간들 같으니.

나는 결국 새벽에 그들을 깨울 수 없겠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든든한 일이니까.

이 사람들 때문에.. 이곳은 나에게 너무 큰 의미다.

너무 소중한 곳이라서 마음이 이렇게 상하고 몸이 이렇게 상해도 쉽게 떠날 수가 없다.

부천 사는 내 친한 친구는 통화할 때마다 미쳤냐며 당장 그 회사 그만두라고 화를 낸다.

몇 년 전 그 때보다 지금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인다며 제발 그만두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여기는 너무 어렵게 찾은.. 너무 어렵게 꾸린 나의 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정말 모르겠다. 

그래도 너무 소중해.


일단은 한숨 돌리자.

괜찮아마을 3기가 끝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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