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 도착했습니다.

보리
2020-07-09
조회수 316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우선 들락날락하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던 곳에 내 텍스트를 올린다니 쑥스러운 마음. 

공장공장은 2018년 괜찮아마을 모집 때 알게 되었는데, 당시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지원조차 못 했다. 

그런데 2020년, 이곳의 책상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이 글을 적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서울에서 삼십여 년을 살아온 나는 단지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긴 시간을 보냈을 뿐, 딱히 좋고 싫음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발 디딘 곳이 숨 막힌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모든 회사를 일반화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거쳐온 회사들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을 반복해서 맞닥뜨렸다. 

마음은 병들고, 정신은 산란해지고, 몸은 망가지고, 표정도 사라졌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었지만 어쩐지 제대로 숨 쉴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비상등을 켜고 조금이라도 쉬어갈라치면,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의 속도와 사람들의 시선에 눈치가 보였다. 

분명 나고 자란 곳인데 마음껏 편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함부로 떠날 수도, 여전히 머물 수도 없었던 날들이었다. 

 

그러던 지난 5월, 명호 씨를 처음 만났다. 긴 대화의 말미에 그가 ‘목포에 한 번 와봐야죠’라고 말했다. 

다년간 단련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음을 연기했지만, 사실 속으로 그랬다. ‘큰일 났다.’ 

공장공장에 입사 지원한 이유는 이곳의 프로젝트에 흥미, 동감, 가치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울이 아닌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고, 심지어 목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명호 씨를 두 번째로 만났을 때, 그러니까 생애 처음 목포를 와보았던 그 날에는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그때도 평온한(척하는) 얼굴로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는 몰랐을 것이다. (이미 들켰지만 모른척해주셨을 수도!) 

그러나 당시 나는 이곳에 오면 써야 하는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얼만큼일지, 현실적으로 잃고 얻는 것들이 무얼지 가늠하느라 무척 바빴다. 

막상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 덜컥, 겁이 났다. 


최종 합격 연락을 받고 난 후에야 나는 본격적으로 망설이기 시작했다. 

축하를 받고 기쁨을 누리기는커녕, 카페에 앉아 머리를 쥐어 싸매고 심각하게 마인드맵을 그렸더랬다. 

연고 없는 곳에 사는 것, 다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회사에 입사하는 것, 생판 모르는 사람과 한집에 사는 것. 그 모든 것에 어떤 확신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있다. 

결국 나를 타지에 오게 만든 것은 우습지만, 굉장히 소소한 것들이었다. 

낯 가린다던 숙현 씨가 건넸던 살가운 인사와 사진 한 장, 이미 이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목포의 경치에 연신 감탄하던 (전날 밤을 새웠다던) 진아 씨의 눈빛, 

막힌 옥상 하수구를 뚫어보겠다며 물웅덩이로 들어가던 명호 씨의 뒷모습, 수줍은 표정으로 다가온 리오 씨가 가면서 먹으라며 손에 쥐여줬던 고구마 빵, 

내가 입사하기도 전인데 ‘보금: 눈동자가 똘망한 것이 ㄱㅣㅇㅕㅇㅓ’라고 적혀있던 한나 씨의 다이어리...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늘 작은 것에서 시작하지 않나. 

그리고 실은, 절대 사소하지 않은 것들. 


입사 3주 차를 지나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어떤 곳을 좋아해서 살게 되는 것과, 정착을 결정한 뒤 그곳에 정을 붙이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니까. 

거기다 조직에 일원이 되는 일은 조심스러우며, 이들이 한창 진행 중인 일은 혼란스럽고, 

집에 가는 것이 낯선 곳에 출근해 또 다른 낯선 곳으로 퇴근하는 것 같아 아직도 잔뜩 경직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모두 선택에 대한, 오로지 내 몫의 책임이니 분주한 마음으로 적응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그것이 서울에서의 조급함과는 아주 다르며, 비교적 편하게 숨을 쉬고 있다는 점. 


목포행을 앞둔 내게 누군가 ‘정말 거기서 괜찮겠어?’라고 물었을 때,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을지, 내가 온전한 나로서 지낼 수 있을지, 살만한 삶이라 말할 수 있게 될지를 전혀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보다, 마을 사람들과 회사 동료들의 ‘괜찮아진’ 경험과 ‘괜찮아질’ 확신을 함께 믿어보기로 했다. 

언젠가 괜찮지 않은 날이 온다면, 작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들에 또 한 번 기댈 수 있지 않을까. 



일단은, 잘 흘러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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