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글부글 바글바글 생글생글

알록
2020-01-23
조회수 1398

비비씨 커버포토 마들(Model)은 나야나~


괜찮아마을에 온 지 6주가 지나고, 작은 성공이 끝나고, 3기의 몇몇 주민들이 떠나고...

플리마켓 일을 시작할 당시 나는 개인적으로 어떤 작은 것이 꿈틀 됨을 느낀 동시에 

괜찮아마을에 왔을 때와 달라진 게 하나 없이, 다시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다 고갈됨을 느낀 상태였다.


다시 무언갈 채워야 했다.

텅 빈 머리든, 텅 빈 마음이든, 텅 빈 몸이든, 텅 빈 통장이든...


난 그 일환으로 빈 공간을 플리마켓으로 채워 보는 바글바글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다.


우리가 채울 빈 공간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냥 해안로의 한 모터 가게 옆 오래된 지극히 평범한 상가 건물이었다.

인적이 많지 않은 한 목포의 건어물 시장 거리에 그곳이 있었다.

"우리 여기 있어요~여기로 오세요"하며 지도에 위치를 상세하게 찍어 주지 않으면 

굳이 찾아 올 일 없는, 그렇다고 큰 길가에 위치한 것도, 북적북적한 가게들이 즐비한 길가에 위치한 것도 아녔기에, 귀가 길에 우연히라도 들릴 일 없는 위치 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작은성공>을 했을 때도 아주 큰 현수막을 입구에 붙여 놨었지만 괜찮아 마을 주민들과 공장공장의 관계자 외의 손님은 거의 볼 수 없었고..

때문에 난 플리마켓을 시작할 때 부터 애초에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초록 지붕의 앤이란 소설 속 주인공 앤셜리는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쁘다고 했지만...


<작은성공> 행사 후로 처음 가 본 그 공간은 참 조용했다.

이 곳에 며칠 전에 <작은성공> 행사를 진행했던 그 바글바글 하고 소란스러웠던 공간이 맞나 싶었다.

빈 의자와 테이블을 보니 며칠 전 <작은성공>을 할 그때만 떠오를 뿐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우선 테이블의 위치를 바꿔 공간을 정비하자고 했다.

공간을 정비하며 팀원들은 말했다. "여기 테이블들이 채워질까요?..." "다 채워져야 되는데..." "만약에 안 채워지면 어쩌죠?..."


그냥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더 말이 안 됐다.

12월 한 겨울, 황금 같은 주말, 북적이지 않는 어느 지방의 한산한 거리, 히터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낡은 건물, 이제 갓 생긴 신생 팝업 마켓 팀...


아무리 테이블과 의자들을 들고 요리조리 옮겨 봐도 플리마켓 공간의 느낌이 잘 나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전에 남아 있던 포스터를 집어 들고 무작정 벽에 붙이기 시작했다. 

역시... 텅 빈 무엇엔 포장이 핵심이다. -그래서 나에겐 그토록 포장지만 잔뜩 있었던 것이였나...-


장소를 정비하고 나니 주력할 부분이 보였다.

SNS 페이지를 개설도 하고, 공장 공장 SNS에도 홍보 글을 올렸다. 

그렇지만 한주가 지나도 별 반응이 없었다.

장터가 무언가 팔고 사는 곳인데... 이대로 아무런 물건이 없다면...

아무리 기대를 안 한다고 해도 거래할 물건 없는 빈 매대인 채로, 상인 없는 장터로 내버려 둘 순 없어

공장 공장 직원들과 괜찮아마을 주민들에게 SOS를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셀러로 참여할 수 있는 몇몇 주민이 있어 바글바글 플리마켓 첫 오픈 날의 매대는 

그럭저럭 채워질 예정이었다.


첫 플리마켓 오픈 날 아침,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마켓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마켓 장소 근처에 가니 엄청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던가... 

설마 우리 공간 앞은 아니겠지 하던 우려는 큰 기계차들을 보고 멘붕으로 바뀌었다. 

플리마켓 건물 바로 앞이 도로 공사로 통제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공사는 온종일 진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플리마켓 진행을 연기해야 했고, 그렇게 플리마켓은 첫 주는 문을 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무산되었다.

 

우리는 차라리 잘 된 걸지도 모른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로 인해 이렇게 새해가 지난 이 시점에도 잔업을 하게 될 거란 건 예상하지 못한 채..ㅎㅎ-

좀 더 정비해서 좀 더 좋은 모습으로 오픈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거라고...

그렇게 SNS에 홍보도 더 하고, 오프라인 홍보 전단지까지 만들어 붙였고 신기하게 정말 바로 효과가 있었다.

셀러들의 참여 문의가 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상보다 많은 문의에 우리는 그저 놀랄 뿐이었다.


그렇게 플리마켓 매대엔 셀러들의 물건들이 빽빽하게 채워지게 되었다.

공간 가운데에서는 체험과 이벤트도 진행했다.

하지만 셀러들을 모집하니 이제는 또 방문하는 고객이 없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매주마다 팀원 모두가 손과 발이 꽁꽁 얼도록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붙였다.

나는 이 정도면 홍보는 정말 충분했다 생각했지만 이런 행사 일이 처음이라던 L씨는 PM답게 행사 당일 날, 아예 사람들 많은 근대역사관 근처에 온종일 있으면서 전단지에 과자까지 나눠주며 모객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반적으로 행사장을 어우르는 역할을 맡은 만큼, 행사 당일 날엔 1층과 2층을 오가며 행사장을 관리했다.

어디서 무얼 하든가 우리 팀원들 모두가 화장실도 거의 가질 않고, 밥도 굶어가며 행사장에 온종일 자리를 지켰다. 


우리 팀원 중에는 마켓을 꾸리면서 중간중간 자신이 취미 삼아 만들었던 것들을 판매하는 동료도 있었는데

그녀가 그것을 판매한다고 한다고 하기 전까진 나도 그저 식탁 위에 널브러진 뜨개질 연습용 나부랭이 정도로 취급했었는데 그녀가 그것을 매대에 올리겠다고 하니 나도 다시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었다.

다시 보니 비뚤배뚤 했던 건 더 삐뚤빼뚤해 보이고, 살짝 튀어나왔던 코도 더 튀어나와 보였다.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절대 매대에 올릴 생각 조차 하지 못했을 것을...

그녀는 단추도 사고, 가격도 매기며.. 완제품으로 탄생시키기 위해 최소한의 디테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물건의 품질을 떠나서 자신이 만든 것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실제로 매대에 제품으로써 올려지니 비뚤배뚤한 모양도, 여기저기 튀어나온 코마저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작품으로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도 사람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나만의 뭔갈 만들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쓰레기통 한쪽 구석에 쳐 박혀있던 종이와 내 그림이 인쇄된 프린트물들을 꺼내어 오리고 붙여 카드를 만들어 가격표를 붙여 매대에 올려놓아 보았다. 플리마켓을 시작할 때처럼 아무런 기대는 하지 않고...


플리마켓을 오픈하니 예상대로 오전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불안한 나는 건물밖에도 포스터를 붙이고, 바글바글한 느낌을 내기 위해 음악을 크게 틀었다. 

최대한 스피커를 창문 밖으로 내놨다. 

그 덕이였을까 행인들은 그 길을 걷는 족족 지나치지 않고 다들 구경 오기 시작했다.

거기에 H씨가 데려온 단체 손님들과 밖에서 덜덜 떨며 열심히 홍보한 팀원들 덕분에 바글바글 한 분위기가 났다. -번외 이야기지만 첫 날 한 셀러로 부터 선곡 변경 컴플레인을 받았었다. 내가 선곡한 곡들이 너무 실험적이라고.. 난 그냥 내가 평소 듣던걸 틀었던건데 그로 인해 내가 듣는 음악 취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내가 실험적인 음악 취향이였던가야?"-


카페에서 차를 팔고 있는데 뜨개용품을 판매하던 팀원이 올라와 말했다.

"A님, A님이 만든 카드 팔렸어요! 사람들이 관심 갖길래 제가 설명을 좀 했더니 구매하셨어요. 그런데 작가인 A님이 직접 설명하면 더 잘 팔릴 것 같아요. " 그녀의 소식에 나는 고맙다고 인사했다. 나는 작품을 설명할 생각도 하지도 않았는데 참 그녀답다 생각했다.

물론 세상에 하나밖에 없던 뜨개질 카드 지갑 역시 팔렸다. 뿐만 아니라 다들 "누가 사" 했던 그녀의 중고 신발도 팔렸다. 


단 하루 만에 별 기대 없이 만든 내 작업도 팔리다니... 꿈만 같았다.

카드가 팔렸단 소식은 내게 적지 않은 큰 감동을 주었다. 그 소식은 단지 "돈 벌었다."라는 느낌이 아니었다. 누구에게 줘도 안 가질 것 같은 쓰레기같이 느껴졌던 나의 가치를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이로 인해 늘 누군가 가치를 매겨 주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던 나는

세상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작은 노력도 가치 있게 생각해주는 여유 있고, 후한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걸... 또 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선 스스로 가치를 매겨 스스로 시장으로 내놓아야 하는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이 전 날 가지고 있는 짐 다 버리고 심플하게 살겠다고 하시고, 바로 다음 날 멋지게 언행불일치를 행해 주셨던 바글바글 VIP손님


그녀의 제안대로 작품 설명을 하진 못했다. 나는 수많은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물건을 팔아 본 경험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의 물건을 어필할 때는 주먹을 꽉 지면 그래도 어찌어찌하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나를 어필하려 하는 건 주먹을 꽉 쥐어도 힘들었다.  


대신 나는 주로 2층 전시장, 작은 성공 때 무화과 빵과 음료를 만들어 팔던 팀의 공간에 자리하면서 

간단하게 차를 만들어 판매하는 카페를 운영하였는데 내겐 그게 더 쉬웠다.

장소가 배고프고 춥고 그렇게 녹록지 않은 여건이었음에도 그곳에 있으면서 따뜻한 차를 만들어 건네주던, 내가 준 차를 건네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간 파트타임일로 무수한 서비스 일을 했었음에도 절대 느껴 보지 못했던 무언갈 바글바글 플리마켓을 하며 느낄 수 있었다.

차뿐만 아니라 셀러들과 플리마켓을 찾은 고객들과 주고받았던 생글생글한 에너지들이 마냥 좋았다.


그렇게 바글바글을 하는 시간은 잃어버렸던 마음속의 생글생글함을 느낀 시간이였다.

-그것은 마치 지난 6주간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작은 성공> 프로젝트를 남은 6주간 플리마켓을 진행하며 뒤늦게 이룬 느낌이라고 할까나...-


2019년12월 바글바글 마켓 마지막 날


-에필로그 같은 프롤로그-


어느 날이었다. 

"저는 INFP예요. MBTI유형 중에서 가장 돈을 못 버는 형이라는..." 

"그래요? 저도 INFP인데..."

우리 팀원들이 하나둘씩 INFP커밍아웃(?)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바글바글 플리마켓 팀원은 총 5명이었는데 

팀원 4명이 모두 다 INFP라며 내게 물었다.

A 씨는 어떤 타입이에요?

내가 답했다. "저 열정적인 중재자... 잔다르크형..... 그게 INFP 맞죠? 하하 "


내 대답을 들은 다른 팀에 있던 한 사람이 말했다. 

"아이고, 바글바글 팀 심히 걱정되네... 팀원 모두가 가장 돈을 못 번다는 INFP라니..."


그래서였을까? 

플리마켓 업무가 끝나고 업무시간을 제대로 계산하고 보니, 바글바글 팀만 시간이 모두 부족해서 1월 달에 추가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었고.... 이렇게 계약 기간이 지난 1월 말일까지 이렇게 에세이를 쓰게 된 것이었다.

팀원들과 다 같은 같은 숙소에 살다 보니 같이 사는 한 달 내내 하루 시작을 플리마켓 관련 대화로 시작해서, 주방 테이블에 앉아 일하는 팀원들을 온종일 마주하며, 플리마켓 관련 대화로 마무리하였기에

함께 일하는 동안 우리 팀 모두가 90시간이 아니라, 한 900시간은 질리게 일 한 느낌이었는데...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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