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적당해서_괜찮아마을 3기 후기

존존
2020-01-21
조회수 626

12주라는 시간을 괜찮아마을에서 보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여름이 남기고 간 땀방울을 닦으며 서울을 떠났는데, 서울로 돌아와보니 겨울바람이 사람들을 휘갈기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다.

12주 뒤에 도착한 서울은 너무 추웠고 모든 것이 낯설었고 정신 없었다.

늘어난 짐 보따리를 들고 온 나를 보며 하우스메이트는 완전히(?) 온 거냐고 물었고, 나는 일단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KTX가 너무 빨랐던 탓일까, 나의 마음은 아직 서울에 도착하지 않았었다.

덤덤하게 안녕- 인사를 나눴지만 마음은 덤덤하지 않았다.

한동안 입만 열면 목포 이야기가 나왔고,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있든, 어떤 것을 보든 간에 목포에서의 시간과 겹쳐 보였다.

같이 사는 친구도 있고 동네에 사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외로움을 느꼈다. 향수병이란 이런 것일까.


6주라는 한정된 기간이 있었기에 목포에 갈 수 있었고 6주가 끝나면 서울에 오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괜찮아마을에 대해 확신이 없었고*,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지만 집 계약 기간도 남아 있고 이런 저런 이유로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체험판이라는 생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간 곳이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안부를 나누고 밥을 나눠먹고 따로 또 같이 삶을 공유하면서 조금씩 애정이 생겼고 마음이 쌓였다.

점점 더 서울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목포에 있고 싶었다.

목포라는 지역도 좋았지만 괜찮아마을 주민들과 시간을 보냈던 목포가 좋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괜찮아’라는 말이 미사여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의심하고 경계했다. 괜찮다, 청년, 지역 등의 키워드를 앞세워 여러 이미지들이 생겨나고 소비되며 결국 당사자는 내쳐지고 배제되지 않을까 의심했다.


조금씩 쌓인 마음의 시작은 지원서를 내고 처음으로 받은 연락이었고, 대부분은 춘화당에서 쌓였다.

앞에서 적었듯이 나는 확신이 없었다.

마음이 이끌린 만큼 불신이 생겼다. 이상적인 만큼 저의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다양한 곳에서 이목이 집중되고 이슈가 되는 만큼 관계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나 결과를 우선시하지는 않을까 싶었다.

그것을 처음 깼던 계기, 괜찮아마을을 만드는 공장공장으로부터 받은 첫 연락은,

지원서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고 전화로 마음을 전하다 보니 예상보다 안내가 늦어졌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문자를 받고 아직은 떨어진 게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놀라움과 고마움을 느꼈다.

지원한 모든 사람들에게 문자나 메일이 아닌 전화로 마음(!)을 전하다니!(마음... 이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중요하긴 하겠지만 그것만을 좇는 곳인 아니겠구나, 관계가 사라진 곳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마음이 가는 공간은 몇 있지만 그 중 제일은 (카페)춘화당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기도 하고 춘화당 같은 공간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함께 요리하며 밥을 먹고, 보드게임을 하고, 개인/공동 작업을 하고, 멍 때리기도 하고, 졸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고, 술롱술롱*을 하고.

꼭 뭔가를 함께 하지 않더라도 같이 있을 수 있었고, 볼 일이 없더라도 지나가다가 편히 들릴 수 있었다.

마을의 정자이자 도시의 광장이었고 집의 거실이었다.

그 곳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흩어질 수 있어서, 각자 뭔가를 하다가도 함께 할 수 있고 또 각자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표정, 각자의 작업에 몰입하는 눈빛과 편안한 표정이 있었기에 춘화당이 더욱 빛났다.

*술롱술롱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술롱술롱이란, 술+살롱의 합성어로 괜찮아마을 3기 주민들을 주축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야간 문화를 말한다. ‘최소 한 시, 최대 두 시’를 목표로 하는, 각자 마실 술을 들고 와 함께 마시며 이야기하는 곳이다. 술을 강요하는 자리도, 꼭 술을 먹어야 하는 자리도 아니다.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는 곳.


목포에서의 하루는 3일처럼 길게, 일주일은 3일처럼 금방금방 지나갔다.

특히나 3일차가 됐을 때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3주 같았고, 엊그저께 첫 주가 지난 것 같은데 벌써 3주차가 됐었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른지 모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우리는 크고 작은 일을 아주 많이 함께 했다.

서로를 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제까지 불린 이름이 아닌 자신이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첫 인사를 나누며 손을 잡았고,

‘괜찮은 꿈’을 비롯한 여러 워크숍과 ‘라이프쉐어’ 툴킷을 통해 마음을 열고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했다.

주민회의를 통해 공동의 약속을 확인하고 만들면서 서로의 경계를 확인했다.

시장에서 재료를 사와 저녁 때 함께 요리하고 먹었다.

각자가 자유롭게 상상한 것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그것을 어떻게든 해볼 수 있게 서로를 도와주고 지지했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공간을 많은 분들과 함께 살아있는 공간으로 바꿨고, 작은 성공 선포식까지 진행했다.

같이 동네를 산책하기도 하고 멀리 여행을 가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괜찮은 식탁’과 식사 당번을 하면서, 그리고 이후에 밥계를 하면서 최소 한 끼* 사람들과 함께 장을 보고 요리하고 밥을 먹었다.

이미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입맛과 취향을 아는 친구들과 있을 때는 요리하는 것이 부담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식구가 늘어나니 요리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

입맛도 취향도 요리 스타일도 다 다르기 때문에 메뉴선정부터 요리 방법, 순서... 기준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밥을 먹는다는 즐거움과 소중함, 요리하는 사람의 부담과 기쁨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계속 할 수 있었고,

감사하게 행복하게 요리하고 먹었다.

그 여느 때보다 더 풍족하게 먹었고 건강하게, 맛있게 먹었다.

*(의식의 흐름) 사랑해요! <최소한끼>! 또 가고 싶다! 유일한 목포의 채식식당! 최고의 채식식당! 또 먹고 싶다! 냠


나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취미를 공유하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대부분 혼자 즉흥적으로 했기 때문인지 다른 사람을 너무 신경 쓰기 때문인지, 언제 어디에 모여서 어떤 것을 같이 하자고 제안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다.

굳이 함께하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충분히 잘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아마을에서 ‘누구나 선생님’을 하고 동네를 산책하고 뜨개질을 하고 유달산을 오르면서 일상의 또 다른 작은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에 소중함을 느꼈다.

같은 행동이라도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는가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지고 새로워지는 것을 느꼈고,

그들이 함께 할 시간을 열어주고 자리를 내어준 것처럼 나도 그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사람들이 어떻게 결을 맞춰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까.

어떻게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함께 할 수 있었을까.


6주 그리고 6주.

3개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괜찮아마을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너비와 깊이는 시간과 상관없는 것 같다.

우리는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서로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며 결을 맞추며 함께 살았다.

같은 경험을 하면서 삶의 일부분을 공유하고, 서로의 다름과 경계를 확인하면서 따로 또 같이 지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고 공통된 감각을 공유했다.

최소한의 약속 안에서 서로를 신뢰했고 배려했다.

적당한 거리가 있었고 적당히 따뜻했다.

많이 배우고 느꼈고,

왠지 모르게 통하고 이상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묘한 감각을 느꼈다.


괜찮아마을은 너무 꿈만 같아서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끝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너무 미웠다.

소중한 이 시간이 단지 괜찮았던 잠깐의 꿈이 되어 버릴까 두려웠고,

그 꿈에서 깨어 그 꿈과 단절된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웠고 두려웠다.


괜찮아마을을 떠나고 보니, 괜찮아마을에서 돌아온 나의 마음을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도 모르게 안전함을 느꼈었고 나름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

(완벽했다는 것은 아니다. 아쉬움도 많고 후회도 많다.)

그 괜찮은 시간을 보내온 지금의 나도 꽤 괜찮은 것 같다.

지금 나는 괜찮아마을이라는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왔다기 보다,

단지 나는 서울에 살고 있는 괜찮아마을 주민 중 한 명일 뿐이고,

나에겐 목포라는 또 하나의 마을이 생겼고, 

삶을 같이 살아가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다는 생각이다.


괜찮아마을은 목포에 있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이 또 다른 괜찮아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그냥 재밌었으면 좋겠고,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다.






재밌게 쓰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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