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말

덕수
2020-01-21
조회수 978


물건을 구매하거나 무얼 먹을지 의논할 때를 제외하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깊게 고민하는 편이 아니다.



저녁 식사 후 부엌에서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게시물을 스크롤 하던 중이었다.

무언갈 찾아내겠다는 의지보다는 무의미한 손가락질에 가까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동우 씨가 올린 채용공고 관련 게시글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글을 다 읽은 뒤 첨부된 링크를 클릭했고, 괜찮아마을과 공장공장 홈페이지를 훑어봤다.

괜찮아마을과 관련된 기사글 몇 개를 읽었고, 식탁 위에서 자기소개서 비슷한 걸 쓰게 됐다.

그리고 한 달 뒤인  2019년 4월 1일, 

공장공장으로 첫 출근을 했다.




1

어쩌다 목포에 가게 된 거야?


목포에 내려갈 거라 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들어온 질문이다.

10번을 넘게 들은 똑같은 질문인데, 목포에 내려오기 직전 날에도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일산 집에 있는 내 짐들을 목포까지 가져 내려왔고, 지금은 10개월 차 목포살이 중이다.


어떤 포부를 갖고 내려온 건 아니었다.

빡빡한 서울살이에 지쳐있을 때 우연히 동우 씨 글을 읽었고 

‘이곳에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가 생겼다.

돌이켜보면 한참 사람에게 지쳐있던 때였다.


목적달성을 핑계로 윤리적 사고를 포기하는 사람, 

자신 때문에 일어난 문제를 남에게 덮어씌우는데 능한 사람, 

정직원 한 명 없이 대학생 인력 착취로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 

솔직함을 무기 삼아 주변 사람에게 상처 주는 언행을 일삼는 사람,

불의에 대항하는 이에게 눈치 없다며 면박을 주는 사람,

딸바보라면서 성희롱 문화에 앞장서는 사람, 

타인을 흉보며 자존감 채우는 사람, 

틈만 나면 이간질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상이었다.


면접 때 난생처음 방문한 목포 원도심은 내가 좋아하는 산책에 최적화된 동네였다.

인적이 드물었고 도로가 지나치게 반듯하거나 넓지 않아 좋았다.

건물 높이가 높지 않아 하늘이 넓게 보였다.

꼬불꼬불한 골목도 많았고, 길고양이도 많았다.

가까운 곳엔 산과 바다가 있었다.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살아보고 싶었다.





2019, 일기를 쓸 수 있었던 한 해


2018년이 끝날 무렵이었다.

분명 시간을 쪼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 시간들이 쌓이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 잠시 모든 걸 중단하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우선 하던 일을 그만뒀다. 회사도, 개인적으로 받아서 했던 일도. 마침 다니고 있던 학원 커리큘럼도 끝이 난 때였다.

주기적으로 나가던 모임 약속도 미뤘다. 핸드폰에 있는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페이스북 앱을 지우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무언가를 해야 될 것만 같은 강박에 책을 들춰 봤지만, 문장 하나 이해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를 보면 이 공허함이 좀 채워질까 싶어 넷플릭스를 틀었는데, 영화 한 편이 끝날 무렵 주인공 이름과 영화 제목이 도통 기억나질 않았다. 

일기라도 써볼까 싶어 일기장을 펼쳤지만, 텅 빈 흰색 종이가 내 머릿속 같단 생각이 들 뿐 아무것도 적지 못한 채 덮어버렸다.


2019년 12월 23일, 전체 회의 날이었다.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우리는 각자에게 2019년이 어떤 해였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초등학생 때 이후로 가장 많은 양의 일기를 썼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이리저리 휘둘리느냐 매일 쓰러지듯 잠에 들었기에 일기 쓸 겨를이 없었다. 

어쩌다 여유시간을 갖게 돼도 한참 고민하다 아무것도 적지 못한 채 일기장을 덮어버린 날이 많았다.

기억하고 싶은 일상을 살지 못했기에 어딘가에 남기겠단 욕심이 없었던 거 같다. 

그랬던 내게 ‘일기를 쓸 수 있던 한 해’란 '기억하고 싶은 게 많았던 한 해', '잘 지낸 한 해'와 같은 의미다.





3

지나가는 말


목포는 참 따숩다. 

실제 기온도 서울보다 3도가량 높다.

나는 이곳에서 사람으로 받은 상처, 사람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걸 직접 경험 중이다.

공장공장에 입사하고 괜찮아마을에 지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익숙지 않은 나에게 대화가 일상인 이들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나름의 속도로 맞춰나가는 중이다.

스스로 낯을 많이 가리고 호불호가 심한 사람인 걸 알기에, 행여 나의 섣부른 언행에 다칠까 천천히 다가가는 중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 데 지쳤다. 

내 주변 사람들을 충분히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다.

분명한 건 이곳에 지내면서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

이들은 나에게 일상을 주고받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알려줬다.

아빠가 매일 꾸준하게 던지는 말도 안 되는 농담들이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됐다.

모두들 쉽게 다치거나 무너지지 않았으면,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좋겠다.


얼마 전 서울에서 친구들이 놀러 왔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하루가 저물어갈 때쯤 한 친구가 나보고 인심 좋은 목포 할머니 다 됐다며 웃어댔다.

서울에선 악에 받쳐 사는 거 같았는데, 지금 참 좋아 보인다는 말을 했다. 

여기에선 혼자 무언갈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이 넉넉하다.

아침, 저녁으로 지옥철에 몸을 맡기지 않아도 되고, 

출퇴근길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있다.


하고 싶은 일도 생겼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민 중이다.

함께 고민해줄 친구도 가까이에 있고, 그 일에 집중할 시간도 충분하다.


물론 여기서도 외롭고, 슬프고, 힘들 때도 있다.

그래도 이곳엔 같이 일상을 나눌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 괜찮다.

맛있는 걸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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