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은 지금 공장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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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주의 (**서론이 김)



6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 두고, 8년간의 연애를 끝내고, 13년간 살았던 서울을 떠났다.


모두 내 의지가 아니었다.


서른두 살의 노국래는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모든 것들로 부터 튕겨 나갔다.


2018년 12월 퇴사를 했다.

그 해의 12월 31일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지만 늘 그랬듯이 창원에 있는 부모님은 재야의 종을 치는 것을 보러 창원시립도서관 뒷산을 찾으셨을 테고

타종식 후에 시청에서 준비한 따뜻한 오뎅국물을 마시며 내게 전화를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새해복 많이 받아라, 올해도 행복해라"라는 얘기에 나는 씩씩하게 그러겠다고 했을 것이다.


늘 일에 치여서 살았고, 업의 특성상 주말도 없이 일했다.

주말에도 영화는 심야영화만 봤다. 시사회에 당첨되어 토요일 낮에 영화관을 간 날은  역시 전화를 붙들고 뛰쳐나갔고 20분을 놓친 영화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유


준비되지 않은 퇴사에 자유는 가득한 불안함과 패배감 속에서 찾아왔다.

결국 자유는 두 달 남짓밖에 가지 않았지만.

두 달간 자유를 누리면서 나는 두 가지 일만 했다.


해가 뜨는 것을 보는 것, 해가 지는 것을 보는 것.



왜 일출과 일몰이 그렇게 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게 그렇게 보고 싶더라.


여기저기 참 많이 다녔다.


월드컵경기장역의 하늘공원도 가고, 관악산도 오르고, 한강 다리를 찾기도 하고 

별 거 없는 장소더라도 해 뜨는 시간, 해 지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일출과 일몰은 굉장히 비현실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인데, 비현실적인 순간이라니!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대기의 변화, 물 드는 하늘색과, 서서히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작스레 찾아오는 빛 또는 어둠.


나를 위로해 준 것 중 5할은 일출과 일몰이 아닐까.



2월 말에 목포에서의 일을 제안 받았다.

도시재생이었다.


대행사에서 일을 하면서 도시재생 관련 프로젝트를 몇 번 진행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냥 행사려니 하고 진행했던 것이지, 사실 잘 몰랐다.


모르는 지역에서 모르는 일을 하라니.

그게 좋아서 하겠다고 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과 내가 해왔던 일에서 그냥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별로 미련 없이 떠났다.


그러나 나는 유배를 당해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는 없었다.




2019년 3월부터 목포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목포 원도심에서 도시재생 일을 하면서 괜찮아마을 친구들을 마주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딜 가든 재밌어 보이는 일은 항상 그들이 준비하거나 그들이 참여 했으니까.


김작가를 비롯해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1년간 목포에서 주민들과 친구들과 함께 살며 일상을 회복했다.

어쩌다 보니 하고 있던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을 상상하면서 해 나갔다.



2020년 목포 생활 2년 차_


2월, 1년간의 목포 도시재생 공동체활성화 용역을 마무리했다.

용역 진행 중에 사업자등록을 한 전업 디자인·영상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되었다.


2019년 2월 서울과 지난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 택했던 목포행이었고,

1년 뒤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었지만 나는 그렇게 목포에 정착하게 되었다.


세종집 2층의 13월 스튜디오와 함께 쓰는 공유사무실에 출퇴근을 하면서 향후 5년간 나를 먹고 살게 해줄 업의 방향을 계획했다.

몇 가지 지원 사업에 지원했고 몇몇과 협업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4월 어느 봄날에 명호씨가 공장공장의 입사를 제안했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2020년 1월 국내 첫 감염자 발생 후,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을 파괴해 갔다.

지난 2월 공장공장은 대부분 직원들의 무급휴가 등 비상사태에 들어갔었고 동우씨는 내게 사업의 존폐를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었다.


공장공장은 그 어려움을 버텼고 위기를 지나 기회에 닿게 되었다.

공장공장이 그간 해왔던 다양한 프로젝트들은 포트폴리오가 되어 다시 많은 일들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직원들이 장기간의 휴가로부터 복귀했고 일인당 2,3개의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등 공장공장이 다시 풀가동되었다.


공장공장을 찾는 많은 이들 중 강진군도시재생지원센터가 있었다.

센터에서 전남인구증가 사업으로 빈집 활용 청년공간 조성사업을 따냈고 이를 운영할 주체로 공장공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시재생 분야에서의 내 경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멕시칸 나이트'·'다함께 집에'같은 뜬금없는 걸 해보는 실험주의적인 성향 때문이었을까.

내게 강진군 사업의 실무자 자리를 제안했다.


개인사업자로 이미 지원한 지원 사업들이 있었고 소소, 탱과 함께 준비하던 스타트업 스몰액션 등으로 고민했다.

그리고 함께 이 제안을 고민해준 소소와의 대화 끝에 입사를 결심하고 준비하고 있던 여러 상황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5월 6일 첫 출근을 했다.


직원들 모두 전부터 알고 인사를 하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동네 친구로서 만나던 이들을 직장동료로써 만나게 되니 몹시 긴장되고 떨렸다.


그날 첫 출근을 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데

함께 입사하게 된 입사동기 욕망성준씨가 있어 적응이 도움이 많이 됐다.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사원증을 만들게 되었는데 나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내가 조직에 입사하여 직장인이 되는 것에 가장 우려했던 것 중 하나는 개인으로써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것이었다.


나는 좀 과한 사람이다.


나는 본명 대신에 '쿵'이라는 이름을 쓴다.

괜찮아마을의 주민들과 공장공장 직원들 역시 모두 닉네임이 있지만, 나는 닉네임이 아닌 이름이라고 얘기한다.

주민등록증에 찍혀있는 내 본명은 나의 의사나 내가 살아온 삶,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관계없이 지어졌다.

(물론 부모님의 사랑은 가득하게 지어졌다.)

나는 이것이 나를 대표하는 이름일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가 지은 이름을 쓴다.

우스갯소리로 노국래(내 본명)은 2019년 서울살이가 힘들어서 죽었다고 말한다.

닉네임 또는 영어이름으로 쓰던 '쿵'을 목포에 오고부터 이름으로 쓰고 있다.


반짝반짝 일번지 공간을 오픈하면서 직원들 개개인이 세콤 보안키를 소지해야했고,

여기에 프린팅을 붙이고 카드목걸이에 넣어 사원증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명호씨와 동우씨는 이 사원증을 직원 개개인이 다른 디자인으로 하기로 했다.

개인마다 자신을 나타내는 오로라를 색상으로 표현하자고.


입사동기 성준씨의 첫 번째 디자인 작업으로, 먼저 성준씨가 샘플 디자인을 했고

이 샘플 디자인으로 모든 직원에게 원하는 색깔과 참조할 레퍼런스를 정해달라고 했다.


나의 최애 컬러인 녹색과 포인트 컬러 노란색을 넣은 오로라를 요청했던 나는 2번 더 성준씨를 괴롭힌 후에 내 마음에 꼭 맞는 사원증을 목에 걸 수 있었다.


공장공장이라는 이름 아래 직원들 하나하나가 빛날 수 있도록 신경써주는 모습에 (티는 내지 않았지만) 몹시 감동스러웠고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공장공장은 멋지고 매력적인 회사다.


내가 구직자였으면 굉장히 가고 싶은 회사였을 거다.

나는 동네친구로써 공장공장을 봐왔는데 동네친구가 봤을 때도 꼭 한번 같이 일해보고 싶은 곳이었다.




공장공장에 입사해 한 달을 지나면서 인상적인 부분들을 써보려 한다.

(입사소감을 쓰라고 해서 이 글을 쓰는데, 입사소감을 이제야 쓰는 게 아닌가 싶다.)



1. 관계


공장공장·괜찬아마을과 친구가 쉽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관계에 대한 생각이 나와 결이 맡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 나이를 묻지 않는다.

만나면 나이부터 물어보고 관계의 위·아래가 결정되는 한국사회의 관습이 좋은 관계의 형성에 제한을 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괜찮아마을 주민들 간은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고 서로 존대를 하며 위아래 없이 동등하게 대하며,

공장공장의 직원들도 직책과 계급 대신에 이름에 '-씨'를 붙여 서로 존대하며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2. 시스템


공장공장에 입사하자마자 가장 놀다웠던 것은 잘 갖춰진 시스템이었다.

시스템은 온라인 베이스의 다양한 협업 툴을 바탕으로 갖춰져 있었는데 슬랙, 비캔버스, 시프티, 닥스웨이브, 키노트 등이 그것이다.

슬랙, 비캔버스 등 몇 가지 비슷한 기능을 갖춘 툴을 굳이 따로 쓰기도 하는데 이것도 한 달간 사용을 하다 보니 그 이점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위에서 나열한 협업 툴들은 젊고 유능한 스타트업 팀들이 만들어낸 것이 지속적으로 사용자의 용도와 편의에 맞게 업데이트가 제공되고 있고

공장공장에서 툴의 활용을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공장공장은 정말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데 이것이 이 협업 툴로 구성된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하구나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일등은 일과 일상을 구분해주는 슬랙이 아닐까 싶다.

카톡으로 업무지시 하는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제공해준다.

★★★★★



3. 업무시간


직장인이라 하더라도 직장생활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개인적인 삶도 존재하고 개인적인 용무도 존재한다.

은행, 관공서, 보험사 등등 이래 저래 사회인에게 필요로 하는 기관들 역시 결국 직장인이기에 낮에 열고 밤엔 닫는다.

어쩌다 은행 한번 가려면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거나 금쪽같은 연차를 써야한다.

…….라고 생각했으나

공장공장은 개인적 볼일이 있다면 보고 오면 된다. 허락을 맡을 필요도 없고, 설득을 할 필요도 없다.

어떠한 이유여도 괜찮다. 볼일을 보고 돌아와서 그 시간만큼 더 일을 하고 가면 된다.

협업 툴을 이용해 기록하고 동료들이 알 수 있도록 메모를 남기면 된다.



4. 체조


2시간의 업무집중 시간이 지나면 오후 4시에는 체조를 한다.

중학교 때쯤 해봤던 것 같은 '새천년기체조'를 한다.

6분 남짓 소요되는 체조를 끝내고 나면 호흡이 가빠져있고 몸에서 열이 나고 땀이 나기도 한다.

꽤 개운하다. 사회인이 되어서 산 이후로 매일 매일 체조를 해본 적이 있었나?

나는 몸이 꽤 뻣뻣한 편이라 등 뒤로 팔을 펴 깍지를 끼는 동작이 잘 안되는데, 놀랍게도 입사 2주도 안되어 동작이 되었다!

4시면 사람이 되게 늘어지는 시간인데 이 시간을 잡아서 리프레시하고 뒤를 이어 수분 보충 타임을 갖게도 만드는 체조는 공장공장의 강력한 매력 포인트 한방이 확실하다.



5. 자체역량


공장공장은 12명의 직원들이 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공장공장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는데 이 요상한 조합은 공장공장이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한다.

나는 이 포인트가 공장공장의 결과물들이 항상 공장공장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직원들 한명 한명의 업무포지션 이외의 능력들도 굉장하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는 이 사람들이 굉장히 흥미롭다.

한명 한명 미니 다큐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아무쪼록

이 과한 사람을 잘 부탁합니다.


KUNG

from MP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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