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만에 목포에 고백했다. ❤️해!

SZY
2020-06-05
조회수 2020

92년생 원숭이띠 윤성준. 

9월 8일 새벽 1시, 목포 그린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날 때부터 목포사람이었고 인생의 80퍼센트를 목포에서 살았지만, 

목포를 좋아하지 않았고 가끔은 창피해 했으며 서울, 때로는 외국을 동경했다.


왜? 나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목포에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이 살고, 친구들과 만든 아지트, 

좋아하는 식당, 카페도 많은데 왜 그냥 `촌구석`이라는 잔인한 말로 무시했을까?

어쩌면 독립해서 주체적으로 살 곳을 정할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동경하는 서울과 외국을 잘 몰랐기에,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막연함을 목포의 일자리 부족을

핑계 삼아 피하기 위해, 목포를 그저 부정해왔던 것 같다. 비겁하지만 가장 편한 방법이니까.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서도 살아보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해외에 취업해서 직장도 다녀보니 목포가 그리워졌다. 기차에 내리면 

멀리서 느껴지는 바다 냄새, 집으로 가며 통과하는 오래된 건물들 모두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예쁘고 빛이 났다. 그리고 느꼈다. 아 나는 목포사람이고 목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구나!


하지만 퇴사 후 목포에서의 삶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프리랜서로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마치 이상에 젖은 나태한 

베짱이가 된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목포에서 내가 안정되게 살 방법은 없을까? 

정말 고민하다 공장공장이라는 회사를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괜찮아마을을 운영하며 실험주의자들이 말도 안 되지만 해보고 싶은 일을 계속하는 곳

이라고 말하는 이 회사가 정말 궁금해졌고 그간 프리랜서로 목포에서 진행했던 작업물들을 모아 지원하게 되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렇게 이곳 공장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목포에서 나의 새로운 경력을 위한 작업을 할 기회를 얻었고, 그 결과로 새로운 직장도 얻게 된 것이다. 

고민, 핑계를 걷어내고 보니 목포에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고향에서 새로운 형태의 회사를 다니며 새로운 좋은 사람들을 만나 

지금의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목포는 고향은 아니지만, 

현재 삶의 터전이며 가끔은 힘들지만, 애정을 갖고 살아가는 장소다. 

이들과 지내며 조금씩 깨닫고 있다. 

사는 곳이 무엇이 중한가….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린 것을…. 

목포에서 나는 행복하기도 지독하게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은 

이곳에 얽힌 나의 추억이며 추억은 소중하다는 것을. 

슬프다고 목포를 혹은 다른 누군가를 탓하기 전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볼 것을.



그렇게 나를 들여다보고 마음을 가다듬자 내가 목포를 사랑한다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쑥스럽지만 목포에게 고백했다. 그동안 미안했고, 사실 난 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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