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마 인생 어차피 반짝이야

홍동우
2017-09-08
조회수 1056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팝업으로 할 수 있을까?




왜 누구나 그럴 때가 있잖아요?


어느 순간 무너질 때. 정말 힘이 들 때.

하던 일 모두 때려치우고, 쉬고 싶을 때.


저는 그랬어요.

'나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자'했는데,

마냥 그렇게 사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사업이란 이름으로 했지만,

돈, 건강, 관계 등이 한계에 도달했죠.

사실은 줄곧 어려움의 경계를 오갔던 것 같아요.

그저 멈출 수가 없어 계속 굴러왔던 거예요.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었어요. 끔찍한 날들이었어요.


어느 날.

그 버티기를 멈추었어요.


한량유치원 4기의 은솔.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어느 오름 위에서




동료 '때밀'과 함께 제주로 내려갔어요.


제주에 살면 좋다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모아 놓은 돈도 많지 않은데, 

또 그 돈을 모두 털털 털어서 제주에 살고 나면,

저는 정말 거지가 되는 거잖아요.

다음 달 또 어김없이 갚아야 할 빚이 쌓여 있었고요.


왜 책이나 방송 보면 다들 전재산 털어서 여행 가고,

직장 그만두고 여행 가고 잘도 하는데...

저는 아무래도 그럴 용기는 없었나 봐요. 

마냥 쉴 수 없었어요. 다음 달 빚을 막아야 했어요.

우리는 나름대로 쉬면서,

또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죠.


돈을 벌지 않을 수 없지만,

또 쉬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나. 돈도 없는 주제에, 제주라이프를 꿈꿨다.




딱, 두 달.


두 달만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하자고 했어요.

제주에서요.

일종의 '팝업 게스트하우스'인 거죠.


어떤 즐거운 일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일상이 되더라고요.

일상은 일상으로 남겨두기로 했어요.

돌아올 일상이 있어야,

우리의 일이 신이 날 것 같았죠.

물론 힘이 들겠지만,

어쨌든 스스로 쉬면서 할 일을 만든 것이니까요.


역시나 '팝업'이 좋겠더라고요.


제주로 출발하다. 나, 때밀, 지은, 애진, 평.




백화점에 가면 팝업스토어가 있잖아요?


사업을 하면서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익스퍼루트 트럭으로 밤에는 용달차 일을 했어요.


백화점이 문을 닫은 밤에 들어가서,

영업이 끝난 팝업스토어의 매대와 물건을

다른 백화점으로 옮겨주는 일이었는데.


처음 강남 현대 백화점 1층 명품관에

들어갔을 때에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어요.


일단,

명품관 사이 그렇게 많은 팝업스토어가 있는 것을 

전에는 몰랐고요.

그리고 그렇게

밤에 팝업스토어를 준비하는 분들이 마치

반짝반짝 별과 같아 보였죠.

최선을 다해 매장을 준비하는 그 눈에,

약간의 긴장과 설렘이 보였고요.

그들의 이마에선 빛이 났어요.

그 순간 그들은

지난 장사와 먼 미래를 생각지 않았을거에요.


오직 당장의 장사.


팝업스토어에 지금 말고, 다음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문득 생각을 했어요.


게스트하우스를 팝업으로 운영하면 어떨까?


팝업스토어 이사 전문 용달차로 쓰이던 익스퍼루트 트럭.




아참, 전에도 팝업 게스트하우스를 한 적이 있죠?


그때에는 팝업이라고 생각지는 못했었죠.

6년쯤 전에,

겨울에만 여는 게스트하우스를 만든 적이 있거든요.

스키장 앞에 게스트하우스가 없길래 열었어요.

삼 년 정도 진짜 겨울에만 운영을 했었어요. 


그런데 제주도는 겨울이 비수기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겨울에 쉬는 게스트하우스도 있다고 들었어요.

쉬는 게스트하우스를 저렴하게 빌릴 수 있지 않을까?


동료들과 회의 끝에 오픈할 팝업 게스트하우스 이름은,

'한량유치원'이 좋겠다고 했어요.

한량처럼 살아왔던 저의 인생도,

잘못되지 않았을 거야 말하고 싶었나 봐요.


어쩌면 우리는 모두 한량을 꿈꾸니까요.


한량 티를 입은 한량 3기 다은




우리는 아침의 느긋한 산책을 즐길 수 있을까요?


잠깐의 식사를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의 요리를 하고,

낮잠도 즐기면서 정원에는 토마토도 키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한량의 이미지가,

저는 사실 굉장히 인간적인 일들이라 생각해요.

분업화된 '직업'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죠.

하지만 최근의 우리는, 마치

'사회 생산성'을 위한 부품처럼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는 왜 우리 자신을,

알량한 '직업' 따위로 소개해야 하나요?


직업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쓰며,

신체・정신적으로 온전히 스스로의 삶을 사는 인간.

그런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죠.


저에게 어쩌면 한량은 완벽한 인간상이었어요.


한량유치원 하루여행 현아




제주도 약 300여 게스트하우스 목록을 만들었어요.


네이버의 지도에 등록되어 있는 곳들로,

지역별로 나누어 엑셀에 옮겨 담았어요.

그리고 제주도에 내려가 백여 곳을 방문했죠.

사장님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며,

며칠간 제주를 돌았는데요.

좋은 분들이 많았죠.


하지만 위치, 분위기, 사장님의 스타일, 가격 등등

여러 면에서 저의 마음을 완전히 충족하는 곳이 나타나지는 않더라고요.

저는 아무래도 깔끔한 곳보다,

조금 더 '한량스러운 곳'을 찾았거든요.

조금은 널브러질 편안함이 있는 그런 곳이요.


그렇게 돈이 다 떨어지기 전에,

그만 서울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에 운명 같은 공간을 만난 것이죠.

깜깜한 밤. 바닷가 앞을 달리다가,

잔디밭 가운데 덩그러니 '공장'같은 곳을 보았죠.


'아 여기서 게스트하우스 하면 좋겠다'


아침부터 밤까지 게스트하우스 숙소만 알아보러 다녔다.




이미 오래된 게스트하우스였어요.


운영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요.

마침 주인아저씨가 왔어요.

낚시를 다녀오는 길이더라고요.

한량의 포스가 물씬 풍겼죠.

처음 만났지만, 함께 맥주를 마시며 얘기했어요.

우리는 그분이 한량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어떤 금전적 제약 없이, 자유로운 사람이었어요.

제주도에 내려와 게스트하우스를 하신지,

약 15년쯤 되었는데,


그곳은 제주도 최초의 게스트하우스였어요.


KBS '1박2일'에도 나와서,

국내 게스트하우스 문화를 알린 곳이기도 하고요.

어느 정도 돈도 버셨고, 사람에 지쳐,

지금은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하지 않고 있었죠.


우리는 그곳을 두 달간 빌리기로 했어요.

이미 그 곳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기로 했지만,

잠깐 우리가 먼저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죠.


생각보다 큰 공간이라, 

예상했던 비용보다 돈이 더 많이 들었어요.

임대료 한 달에 350만 원.

그래도 공간이 꼭 마음에 들어, 덜컥 결정을 했죠.


'한량유치원'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청소하고 요리하고 장작패고 청소하고



창 밖의 숲을 볼 수 있게 창을 깨끗이 닦았어요.

인생에 한 번도 한량이었던 적이 없던 우리가 모여,

이 곳에서는 한량인양 지내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모든 공간은 충분히 늘어질 수 있는 곳으로 꾸몄죠.

라운지를 넓은 마룻바닥으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마룻바닥에 전기장판과 이불을 깔았어요.

중앙의 커다란 난로는 종일 따뜻하게 피웠고요.

사람들은 술이나 텔레비전 대신,

앉아서 엎드려서 귤을 까먹으며 얘기를 나누다...

별을 보며 잠들었어요.

아침에는 거실 창 밖 바다 위로 해가 떠올랐죠.


일출. 아 일출은 정말...

지겹도록 보아도 지겨워지지 않았어요.


한량유치원 3기의 예슬. 숙소 앞에서 바라본 일출.




느지막이 일어나 어슬렁 걸을 수 있는 숲과 바다.


사실 그 곳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여행이었죠.

그런데 또 그렇게 제주에 살다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유명하지 않아도, 보물 같이 예쁜 장소들을 알았죠.


그래서 제주 100시간 여행을 만들었어요.


4박 5일. 100시간 동안.

사람들과 제주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여행이에요.

제 주특기잖아요.

사람과 함께 여행을 만드는 일이요.

하루 종일 차로 바닷길을 달리다,

경치 좋은 카페에서 쉬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무도 없는 오름에서 노을을 보고,

숙소에 돌아와 요리를 하고,

바다에 나가 별을 보는,

그런 여행을 만들었죠. 


쉬기로 한 제주살이에서 또 일을 하게 되었어요.


한량유치원 4기. 안신나 보이는 것은 기분탓.




두 달 동안 운영기간은 49일 정도.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한량으로 밤을 보냈죠.

49일 동안 동안 우리는 671개의 밤을 만들었어요.


제주도를 한 열다섯 바퀴 정도 돌았던 것 같아요.


한량유치원 한달살이의 하루 여행




어차피 놀면서 하기로 한 일이어서 일까요?


팝업 게스트하우스 운영은 즐거운 일이었어요.

사람들이 놀러 왔죠. 함께 놀았어요.

두 달은 빠르지만, 또 많은 추억들이 쌓였고요.

게스트하우스는 월 350만 원에 빌렸는데, 

매출은 두 달에 3500만 원가량 되었고요.

이것저것 지출을 다 빼고 나면, 

이익은 11,246,000원이었네요.


때 밀과 둘이서 했으니, 

1인당 5,623,000원이 남았던 것이죠.


팝업 게스트하우스는 성공적이었던 셈이겠죠?


49일동안 671박을 치뤘다.




글쎄요.


팝업 게스트하우스를 하며 배운 하나가 있다면,

삶에 영원한 성공도 영원한 실패도 없다는 것일까요.


그래요.

삶은 끊임없는 팝업의 연속이죠.


반짝, 그리고 반짝.

이 짧은 팝업들 속에서

우리가 지금의 팝업을 즐길 수 있다면,


우리 삶도 어느새 모두 반짝반짝하고 있을 거예요.





여담.

제주도에서 잘 찾아보시면,
그렇게 단기로 임대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들이 종종 있습니다.
당연히, 큰돈은 벌지 못하겠지만 말이에요.
일하면서 놀고, 놀면서 일해볼 수 있어요.
혹시 제가 다니며 정리해놓은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목록표가 필요하신 분은,
메일 주소 남겨주세요.
천천히 보내드릴게요.
누락된 곳도 많이 있지만, 여러분이 업데이트해서 돌려주세요.

당신도
돈을 벌지 않을 수 없지만, 또 쉬지 않을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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