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오늘, 그러니까 21일 금요일 저녁께 쓰려고 했던 매거진이었다. 목포에 온 이유, 그리고 이곳에서 지내며 겪고 느낀 그런 이야기들.. 을 자유롭게 써보는, 그런.
그러나 오전 2시 33분에 지금 나는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지금 이 상태로는 잠을 자긴 틀렸다.
아마 다른 분들의 매거진보다 두서 없고 다소 무거운 이야기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고민했다. 어디까지 붓고 어디까지 덜어야 하는지.
- 예지몽
나는 예지몽을 무척 잘 꾼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 문득,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아 그때 그 꿈에서 봤구나, 하는 것 말이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렇다. 그리고 예지몽을 경험할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내가 그간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물이 전면부정 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다'고 날 약 올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목포에 내려온 이래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빈도가 늘었다. 가장 심할 때는 무려 일주일에 삼 일이 그랬다. 많이 순화해서 표현하자면, 정말 기분이 나빴다. 어이가 없는 건 물론이었다. 이상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가진 선택지 중에서 가장 변수가 크고 예측하기 힘든 것이 바로 이곳이었는데. 참 웃기는 일이다.
- 보내지 못한 이력서
나 역시 평범하게 우여곡절을 거쳐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게 2016년. 급격한 회의감이 엄습한 건 일을 시작하고 1년이 조금 넘어서였다. 삶의 방향성을 찾을 수 없었다. 고민했다. 예상되는 결과는 크게 두 갈래였다. 그냥 계속 일 열심히 하고 먹고 살 만한 상태에서 사치 부리듯 고민을 이어나가거나, 아니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거나. 언제든 죽을 수 있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큰 어려움 없이 후자를 택했고, 칩거를 시작했다.
으레 그렇듯 일을 관둔다고 해서 삶이 뭔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계좌에 있는 잔고만 줄어들 뿐이지. 그래도 괜찮았다. 씀씀이가 워낙 적기도 했고 뭘 하든 입에 풀칠은 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좋았다. 모처럼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고 덕분에 있는 힘껏 무료함을 만끽했다.
시간을 보내며 정리한 내 질문의 답,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의문은 애시당초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깨닳음으로 귀결되었다. 삶은 단지 현상일 뿐 그 자체는 의미가 없다. 단지 사람들이, 간혹, 부여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그 다음이다. 나는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한다면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여기서부터는 현재진행형이다.
사실 나는 위 생각에 다다를 때쯤 다음 직장으로 (주)공장공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바로 이곳 말이다.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있는 공간이기에 어느 정도 그 속성이 짐작 가기도 했고 또 어쨌든 한번 실험을 해본다는 캐치프레이즈가 좋았다. 마침 인원을 채용하려는 중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지원을 하지 않았다. 못했다. 나는 자격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 공간이 원하는 능력, 경력, 경험, 결과물, 그 무엇도 가진 게 없었다. 나는 내 주제를 잘 안다. 나는 이 공간에 어울리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괜히 설명회를 들락거릴 뿐이었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두 손을 뻗어 이상을 잡으려 할 때 적어도 두 발은 현실 위에 디디고 있어야 하니까. 아쉬움을 정리하고 내 살 길을 찾는 일을 반복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함께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연락을 받았을 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상황은 납득할 만했다. 급하게 공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인데 일손은 부족하고, 또 실제 공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없다보니 어려움을 겪는 상황. 가장 걸리는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
나는 '김혁진이어서' 제안을 받은 게 아니었다. 단지 제한된 상황에 부합하는 게 어쩌다 '결과적으로 김혁진'이었을 뿐이었다. 만약 나와 비슷한, 혹은 더 유능한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명백하다. 그래서 계속 물었다. 필요로 하는 사람이 정말 '내가' 맞냐고. 신중하게 선택해달라고. 묻고 또 물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선발된, '그 사람이기에' 일하는 사람들일 텐데, 내가 그곳에 가서 어떤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내가 심心적으로나 신身적으로나 감당할 수 있을까? 난 회의적이었다.
- 생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포로 내려온 이유는, 당시 그 순간이, 슬슬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겠다. 그렇다. 어쨌든 먹고 살기 위해선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내 현재 마음으로는 미루고 미루다 적당한 곳에서 일한다고 한들, 물론 평소처럼 열심히는 하겠지만, 얼마 안 가 다시 엄습하는 회의감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물론 앞선 고민의 결과인, 새로운 건축 관련 교육 과정을 막 수강하던 때였기에 굳이 목포로 내려오지 않아도 적어도 나는 상관 없었다. 어차피 다시 해보는 건 똑같은 거니까. 그 당시 쟁취했던 그 기회도 쉽게 얻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포로 내려온 결정적 원인은 결국 막연한 기대였다. 내가 옆에서 봐왔던 그곳은 실제로는 어떨까? 혹시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아니면 달라지기 위해 무엇인가를 실험해보고 있지는 않을까?
지금 내가 이런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결과적으로 이곳은 다른 곳과 조금은 다르다는 결정적 증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역량
간단하게 채비를 꾸려 목포에 내려온 다음 날부터 현장에 들어갔다. 하는 일은 익숙했지만 둘러싼 환경은 전혀 달랐다. 그래도 일은 할 만했다. 예상대로, 굳이 내가 아니어도 괜찮은 그런 일들이 많았으니까. (물론 가면 갈수록 노동강도가 높아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고민이 깊어졌다. 나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생각을 하면서 일을 했고 생각을 나누고자 노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내가 보였다. 그래도 이미 선택한 일을 후회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못 먹어도 고, 그저 당장의 하루에 집중하며 시간을 채워나갔다. 여러 곳에서 도움을 받아가며 톱니바퀴를 굴렸다.
지금이라고 없던 역량이 생겼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순간 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는 않았다.
- 로라
지금 이 순간까지 일을 해나가면서 몸도 마음도 힘들 때가 많았다. 돌이켜보면 가장 위안이 됐던 순간은 길고양이 로라와 우진장에서 단 둘이 보낸 약 일주일 간의 시간이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 어쩌다 식구가 됐다가 결국엔 독립한 로라. 그 친구가 독립하기 전 우진장 1층에서 잠깐 머문 때가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나는 졸지에 집사 체험을 하게 됐다. 실내 온도를 맞추고, 끼니를 챙겨주고, 틈틈이 놀아도 주고. 순하고 사람을 잘 따라서 의자에 앉아있으면 옆 의자에 올라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쓰다듬어 주면 좋다고 그르렁 거리던 로라. 나는 로라 앞에서 혼자 하소연을 참 그렇게도 많이 했더랬다.
하소연이란 게 당연하게도 좋은 내용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어느 누구와도 편하게 나눌 수 없었다. 전체 회의 시간마다 들은 말이 떠올랐다. 바쁜 상황인 만큼 다들 힘들겠지만 그럴수록 서로 이해하고 도와야 한다는. 맞는 말이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봐야 좋을 것 없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단지 연고 없는 객지에 내려와 혼자 지내고 있는 내 상황이 당연하지 않은 축에 속하는 것뿐이다.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서 옆자리에 있어준 로라가 무척이나 생각나는 오늘이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물론 가끔 동네를 거닐다가 마주칠 때도 있긴 하다. 비록 나를 알아보는 체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게 로라 본연의 삶일 테니까.
- 여유가 없는 사람들
나를 비롯한 다른 공장공장 식구들을 일컫는 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느끼는 바는 그렇다. 여유가 없다. 과거에는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보인다. 어쩌면 내가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비쳐보이는 것뿐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바쁘고, 일이 많다. 쏟아지는 업무에 어렵사리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데드라인과 밀당하며 온전히 몸과 마음을 쏟아낸다.
최악이다. 이러면 결국 지친다. 지속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알고는 있다. 상황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다음엔 좀 더 괜찮아질 거라는 것을. 그래서 더 안타깝다.
이곳의 일은 참 이상하다. 마음을 쏟을수록 내가 자꾸 아프다. 세상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경험을 통해 온몸에 각인되어 있을 터인데도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거리를 확인해보고 있다. 사실 아직도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너무 가까운 건 아닌지, 혹은 너무 먼 건 아닌지. 내가 이곳에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어느 정도 위치에 서 있으면 좋을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은 괜찮은지. 정말 괜찮은 건지.
- 하고 싶은 일
이제 나는 새로운 국면의 문제, 사실은 시작하기 전부터 알고 있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시기에 다달았다.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인생에서 생활력을 가장 우선으로 본다. 여기에서 생활력이란 경제력을 뜻하는 게 아니라 '일상을 유지하고 지속시켜 나가는 능력'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생활의 기반인 공간을 고치고 가꾸는 일이다. 대단한 걸 바라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편의 시설, 그러니까 전기, 수도, 냉난방, 설비 등에 다소 문제가 있을 때 큰 무리없이 해결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일상의 기반을 튼튼하게 유지할 수 있는 힘. 내가 건축을 배우려 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적어도 내 일상은 내가 지키고 싶었다.
그렇지만 일상은 물리적인 것만으로 구성되진 않는다. 무엇을 통해 주어진 시간을 보내는지에 따라 일상의 형태는 천차만별이 된다. 업을 무엇으로 삼고 있는지, 동시에 여가는 어떻게 보내는지, 그리고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등등. 내가 글과 사진에 애착을 갖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돌이켜보고 싶다. 앞으로 갈 길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지금은.. 고민이 커져간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동시에 두렵다. 내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사라질까봐. 더 이상 이 공간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까봐. 그렇게 맨 처음 걱정한 대로 결국 나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게 현실이 될까봐 말이다.
그래서 나는 불안하다. 어쩌면 나는 또다시,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무엇인가를 증명해내야 할지도 모른다.
- Sincerely Yours
어쩌면 마무리는 훈훈하게 하는 게 그림상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마지막 단락에 손을 오래 얹어두고 있다.
목포 하늘은 제법 괜찮다.
원래는 오늘, 그러니까 21일 금요일 저녁께 쓰려고 했던 매거진이었다. 목포에 온 이유, 그리고 이곳에서 지내며 겪고 느낀 그런 이야기들.. 을 자유롭게 써보는, 그런.
그러나 오전 2시 33분에 지금 나는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지금 이 상태로는 잠을 자긴 틀렸다.
아마 다른 분들의 매거진보다 두서 없고 다소 무거운 이야기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고민했다. 어디까지 붓고 어디까지 덜어야 하는지.
- 예지몽
나는 예지몽을 무척 잘 꾼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 문득,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아 그때 그 꿈에서 봤구나, 하는 것 말이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렇다. 그리고 예지몽을 경험할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내가 그간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물이 전면부정 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다'고 날 약 올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목포에 내려온 이래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빈도가 늘었다. 가장 심할 때는 무려 일주일에 삼 일이 그랬다. 많이 순화해서 표현하자면, 정말 기분이 나빴다. 어이가 없는 건 물론이었다. 이상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가진 선택지 중에서 가장 변수가 크고 예측하기 힘든 것이 바로 이곳이었는데. 참 웃기는 일이다.
- 보내지 못한 이력서
나 역시 평범하게 우여곡절을 거쳐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게 2016년. 급격한 회의감이 엄습한 건 일을 시작하고 1년이 조금 넘어서였다. 삶의 방향성을 찾을 수 없었다. 고민했다. 예상되는 결과는 크게 두 갈래였다. 그냥 계속 일 열심히 하고 먹고 살 만한 상태에서 사치 부리듯 고민을 이어나가거나, 아니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거나. 언제든 죽을 수 있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큰 어려움 없이 후자를 택했고, 칩거를 시작했다.
으레 그렇듯 일을 관둔다고 해서 삶이 뭔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계좌에 있는 잔고만 줄어들 뿐이지. 그래도 괜찮았다. 씀씀이가 워낙 적기도 했고 뭘 하든 입에 풀칠은 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좋았다. 모처럼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고 덕분에 있는 힘껏 무료함을 만끽했다.
시간을 보내며 정리한 내 질문의 답,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의문은 애시당초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깨닳음으로 귀결되었다. 삶은 단지 현상일 뿐 그 자체는 의미가 없다. 단지 사람들이, 간혹, 부여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그 다음이다. 나는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한다면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여기서부터는 현재진행형이다.
사실 나는 위 생각에 다다를 때쯤 다음 직장으로 (주)공장공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바로 이곳 말이다.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있는 공간이기에 어느 정도 그 속성이 짐작 가기도 했고 또 어쨌든 한번 실험을 해본다는 캐치프레이즈가 좋았다. 마침 인원을 채용하려는 중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지원을 하지 않았다. 못했다. 나는 자격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 공간이 원하는 능력, 경력, 경험, 결과물, 그 무엇도 가진 게 없었다. 나는 내 주제를 잘 안다. 나는 이 공간에 어울리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괜히 설명회를 들락거릴 뿐이었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두 손을 뻗어 이상을 잡으려 할 때 적어도 두 발은 현실 위에 디디고 있어야 하니까. 아쉬움을 정리하고 내 살 길을 찾는 일을 반복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함께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연락을 받았을 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상황은 납득할 만했다. 급하게 공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인데 일손은 부족하고, 또 실제 공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없다보니 어려움을 겪는 상황. 가장 걸리는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
나는 '김혁진이어서' 제안을 받은 게 아니었다. 단지 제한된 상황에 부합하는 게 어쩌다 '결과적으로 김혁진'이었을 뿐이었다. 만약 나와 비슷한, 혹은 더 유능한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명백하다. 그래서 계속 물었다. 필요로 하는 사람이 정말 '내가' 맞냐고. 신중하게 선택해달라고. 묻고 또 물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선발된, '그 사람이기에' 일하는 사람들일 텐데, 내가 그곳에 가서 어떤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내가 심心적으로나 신身적으로나 감당할 수 있을까? 난 회의적이었다.
- 생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포로 내려온 이유는, 당시 그 순간이, 슬슬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겠다. 그렇다. 어쨌든 먹고 살기 위해선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내 현재 마음으로는 미루고 미루다 적당한 곳에서 일한다고 한들, 물론 평소처럼 열심히는 하겠지만, 얼마 안 가 다시 엄습하는 회의감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물론 앞선 고민의 결과인, 새로운 건축 관련 교육 과정을 막 수강하던 때였기에 굳이 목포로 내려오지 않아도 적어도 나는 상관 없었다. 어차피 다시 해보는 건 똑같은 거니까. 그 당시 쟁취했던 그 기회도 쉽게 얻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포로 내려온 결정적 원인은 결국 막연한 기대였다. 내가 옆에서 봐왔던 그곳은 실제로는 어떨까? 혹시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아니면 달라지기 위해 무엇인가를 실험해보고 있지는 않을까?
지금 내가 이런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결과적으로 이곳은 다른 곳과 조금은 다르다는 결정적 증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역량
간단하게 채비를 꾸려 목포에 내려온 다음 날부터 현장에 들어갔다. 하는 일은 익숙했지만 둘러싼 환경은 전혀 달랐다. 그래도 일은 할 만했다. 예상대로, 굳이 내가 아니어도 괜찮은 그런 일들이 많았으니까. (물론 가면 갈수록 노동강도가 높아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고민이 깊어졌다. 나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생각을 하면서 일을 했고 생각을 나누고자 노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내가 보였다. 그래도 이미 선택한 일을 후회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못 먹어도 고, 그저 당장의 하루에 집중하며 시간을 채워나갔다. 여러 곳에서 도움을 받아가며 톱니바퀴를 굴렸다.
지금이라고 없던 역량이 생겼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순간 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는 않았다.
- 로라
지금 이 순간까지 일을 해나가면서 몸도 마음도 힘들 때가 많았다. 돌이켜보면 가장 위안이 됐던 순간은 길고양이 로라와 우진장에서 단 둘이 보낸 약 일주일 간의 시간이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 어쩌다 식구가 됐다가 결국엔 독립한 로라. 그 친구가 독립하기 전 우진장 1층에서 잠깐 머문 때가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나는 졸지에 집사 체험을 하게 됐다. 실내 온도를 맞추고, 끼니를 챙겨주고, 틈틈이 놀아도 주고. 순하고 사람을 잘 따라서 의자에 앉아있으면 옆 의자에 올라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쓰다듬어 주면 좋다고 그르렁 거리던 로라. 나는 로라 앞에서 혼자 하소연을 참 그렇게도 많이 했더랬다.
하소연이란 게 당연하게도 좋은 내용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어느 누구와도 편하게 나눌 수 없었다. 전체 회의 시간마다 들은 말이 떠올랐다. 바쁜 상황인 만큼 다들 힘들겠지만 그럴수록 서로 이해하고 도와야 한다는. 맞는 말이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봐야 좋을 것 없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단지 연고 없는 객지에 내려와 혼자 지내고 있는 내 상황이 당연하지 않은 축에 속하는 것뿐이다.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서 옆자리에 있어준 로라가 무척이나 생각나는 오늘이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물론 가끔 동네를 거닐다가 마주칠 때도 있긴 하다. 비록 나를 알아보는 체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게 로라 본연의 삶일 테니까.
- 여유가 없는 사람들
나를 비롯한 다른 공장공장 식구들을 일컫는 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느끼는 바는 그렇다. 여유가 없다. 과거에는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보인다. 어쩌면 내가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비쳐보이는 것뿐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바쁘고, 일이 많다. 쏟아지는 업무에 어렵사리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데드라인과 밀당하며 온전히 몸과 마음을 쏟아낸다.
최악이다. 이러면 결국 지친다. 지속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알고는 있다. 상황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다음엔 좀 더 괜찮아질 거라는 것을. 그래서 더 안타깝다.
이곳의 일은 참 이상하다. 마음을 쏟을수록 내가 자꾸 아프다. 세상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경험을 통해 온몸에 각인되어 있을 터인데도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거리를 확인해보고 있다. 사실 아직도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너무 가까운 건 아닌지, 혹은 너무 먼 건 아닌지. 내가 이곳에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어느 정도 위치에 서 있으면 좋을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은 괜찮은지. 정말 괜찮은 건지.
- 하고 싶은 일
이제 나는 새로운 국면의 문제, 사실은 시작하기 전부터 알고 있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시기에 다달았다.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인생에서 생활력을 가장 우선으로 본다. 여기에서 생활력이란 경제력을 뜻하는 게 아니라 '일상을 유지하고 지속시켜 나가는 능력'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생활의 기반인 공간을 고치고 가꾸는 일이다. 대단한 걸 바라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편의 시설, 그러니까 전기, 수도, 냉난방, 설비 등에 다소 문제가 있을 때 큰 무리없이 해결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일상의 기반을 튼튼하게 유지할 수 있는 힘. 내가 건축을 배우려 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적어도 내 일상은 내가 지키고 싶었다.
그렇지만 일상은 물리적인 것만으로 구성되진 않는다. 무엇을 통해 주어진 시간을 보내는지에 따라 일상의 형태는 천차만별이 된다. 업을 무엇으로 삼고 있는지, 동시에 여가는 어떻게 보내는지, 그리고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등등. 내가 글과 사진에 애착을 갖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돌이켜보고 싶다. 앞으로 갈 길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지금은.. 고민이 커져간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동시에 두렵다. 내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사라질까봐. 더 이상 이 공간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까봐. 그렇게 맨 처음 걱정한 대로 결국 나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게 현실이 될까봐 말이다.
그래서 나는 불안하다. 어쩌면 나는 또다시,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무엇인가를 증명해내야 할지도 모른다.
- Sincerely Yours
어쩌면 마무리는 훈훈하게 하는 게 그림상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마지막 단락에 손을 오래 얹어두고 있다.
목포 하늘은 제법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