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혜
2019-03-24
조회수 1677


호주에서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1년 8개월을 살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그곳에서는 남들과 조금 달라도 아무도 손가락질하거나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모두가 자유로웠다. 너무너무 평화로워서 그 평화가 평화인 줄도 몰랐다. 



한국에 돌아와서 평화가 깨졌다.

들어오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다.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수중에 돈이 많지 않으니 일을 해야 했다.


내가 하고 싶던 일과는 무관한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서울은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안 좋은 공기투성이에다가 가까운 거리도 너무 멀었다.

남자친구도 나도 일이 늦게 끝났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밥 먹고 잠자기만 반복했다.

꿈과는 너무나 다른 삶에 지쳐갔다.


그러던 와중 괜찮아마을을 알게 됐다.

주저하는 나를 남자친구가 나를 적극 설득했다. 사실 많이 고민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목포까지 내려가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의미 없이 돈만 벌면서 일하지 말자고 생각하던 호주에서의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결심했다.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야근을 하는 것이 기본이던 동엽이는 일까지 그만뒀다.

그 대신 택배회사에서 상하차 알바를 하면서 괜찮아마을에 제출할 영상을 만들었다. 그만큼 간절했다.


무지하게 떨렸던 면접을 보고, 발표날까지 하루하루 세어가면서 기다렸다.

발표날 일을 하느라 받지 못해 부재중 전화로 찍혀있던 낯선 번호를 보고 심장이 엄청나게 뛰었던 걸로 기억난다.

전화를 다시 거는 그 순간에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괜찮아마을 입주가 사실이 되었을 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통화하던 상대방과 한참을 웃었을거다, 아마.



30명이 넘는새로운 사람들을 갑자기 만났다.

지금은 참 편한 사람들이 되어 항상 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때는 정말 정말 어색했다.

괜찮아마을에 있는 동안, 이곳에 오기 전 고민했던 내 모습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즐거웠다.



수료 날짜가 다가오고 하나 둘 목포에 남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혼자서 생각을 하고, 동엽이와 상의를 하고 결정을 했다.

목포에 남자. 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래도 좋겠다. 계속 즐겁겠다.


하지만 목포에서도 수익은 있어야 했다.

그래서 공장공장이 히치하이킹 페스티벌이라는 축제를 만들 때 홍보를 맡아 잠깐 했고,

그거로는 모자라 공장공장이 목포시의 지원을 받아 단기로 채용을 진행할 때 합류를 했다.


그리고 3월, 정직원이 됐다.



정직원이 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재미있다.

주말이 지나가는 게 느껴져도 끔찍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월요일 아침 눈을 뜨면서 회사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남들과 조금 달라도 아무도 손가락질하거나 왜 그러냐고 묻지 않는다.

다시 나에게 평화가 온 느낌이다.

이번에는 온전히 이 평화를 즐겨야겠다.

무감각해지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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