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려고 이랬나보다

박다은
2018-01-08
조회수 1953

<이럴려고 이랬나보다>


행복한 순간 제가 자주 떠올리는 말이에요.

이럴려고 이랬나보다.


12월 31일,

2017년을 마치며 저는 생각했어요.

‘아, 이럴려고 이랬나보다’


목포의 우진장으로 오기까지,

올해 2월 일을 그만두기까지,

그 일을 선택하고 하기까지,

다 이럴려고 이랬나보다.


-그날의 시작

12월 31일, 저는 행사를 기획하였어요.

그럴려고 내려온 건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그냥 여행을 길게 다녀오고 나니 생각났어요.

내게 처음 여행을 알려주었던 익스퍼루트가

지금 나의 여행을 찾도록 도와준 그와 크루들이


그래서 그냥 만나러 왔어요.

올해가 가기 전, 얼굴 한번 보고 싶었거든요.


그럴려고 한건 아닌데 생각보다 일찍 내려오게 되었었어요.

그쯤 남자친구랑 헤어졌고

어디론가 빨리 떠나고 싶어졌었거든요.


내려와 보니 입주 전이라 직원 분들만 있더라구요.

그들은 무언가에 굉장히 열심이었고, 무언가 굉장히 설레어보였어요.

그래서 궁금했고, 심심해서 관찰했어요.


그러면서 그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보게 되었고,

무엇 때문에 이리도 열심히 하고 설레어하는지를

알게 되니 저도 같이 상상하며 가슴이 뛰더라구요.


그렇게 하루, 이틀 더 지내던 어느 날,

이런 말을 보게 되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 할 순 없을까?’


그 문구가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

‘지금 내가 해보고 싶은 것’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한량유치원’이라는 이 공간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나, 둘 떠올리게 되었고

그것들을 하고 싶다 말하게 되었어요.


두 대표님들은 현실적으로 실행해볼 수 있는지를 고민하다

저에게 바로 실현 가능한 새로운 제안을 해주셨어요.


“익스퍼루트의 3주년 행사를 기획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처음에 원하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제게는 설레는 일중의 하나였어요.


몽골 해외봉사에서의 ‘이벤트 팀’

익스퍼루트 레드라인 ‘30살 기념 파티’,‘익친소’,‘할로월리’등

지금까지 기획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껴왔고

‘이벤트 회사에서 일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까지 했던 제게

이런 일을 준비해볼 수 있는 경험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었거든요.


뭔가 준비하는 과정이 굉장히 설렐 것만 같았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만 같아

그 말에 행복해지기 시작했어요.


-항상 처음이라는 건

그런데..

그 느낌은 정말 단 하루였던 것 같아요.

막상 준비를 하려고 보니 이전처럼 혼자 생각하고

무언가를 진행하기에는 제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직원 분들과 협력해보려 해도

마케팅, 그림, 공간, 펍, 기획 담당이라는 말 이외에는

어떤 일을 하시는지, 어느 부분을 어떻게, 얼마만큼, 언제 이야기 나누어야 할지

결국 제게는 다 모르는 부분들이었어요.


혼자 준비했던 이벤트들은 날짜와 장소를 잡고

하나씩 시간에 맞게 해주고 싶은걸 채워 준비했다면


이 행사는 공지를 위해 이미 무엇을 할지가 완벽히 나와야했고

인원모집, 마감, 안내, 예약 등이 순차적으로 척척 이루어져야하는데

그것들을 전체적으로 보는 눈이 제겐 없었어요.

“경험이 없으니 당연해”

“하면서 배우는 거고, 부딪치고 늘면 나중엔 더 잘할거야”

생각하면서도


당장 다음에 무엇이 이루어져야하는지

두, 세발 먼저 보지 못하니 부딪칠 때마다 급했고

어영부영 흘려보내는 시간들이 늘어났으며

내가 뭘 하고 싶었던 건지도 잊을 정도로

방향이 없어져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우진장에 온 5일째 되던 날 밤.

“역시 사람은 하던 걸 해야하나”

“이래서 잘 하는 거 따로, 하고 싶은 거 따로 라고 말하나보다” 하며


괜히 우진장 식구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에

마음이 속상해지기 시작했어요.


-탁 하는 순간

그렇게 어려움과 속상함에 시간만 보내던 어느 날,

좋은 사람이 찾아왔어요.


내가 어떤 말을 자주하는지

내가 어떤 시간들을 보내왔는지

내가 어떤 생각들로 인해 행동하는지

알아보는 그런 사람이요.


그녀는

내가 힘들어하는 걸 알아보았어요.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를 알아보았고,

내가 안 힘들기 위해선 무엇이 해결되어야하는지를 알아보았어요.


그래서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가장 필요로 했던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고,

가장 찾아야했던 재미를 느끼도록 함께 해주었으며,

가장 힘들어했던 사람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었어요.


그렇게 그 모든 것들을 함께하고 나니

마음이 다시 편안해졌어요.


그녀는 저를 정확히 이해하고

깨닫는 탁 하는 순간을 선물해주었거든요


전 한사람을 이해하기까지

아주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어떤 일들을 겪었고,

어떤 것들을 느꼈고,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지

차근차근 알아야 조금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믿어요.


그리고 결론적으로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딱, 내가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랑 이야기 나누는 것이 재미있어요.

그 사람 안에 있는 걸 내가 다 알 수 없기에

어떤 생각이 더 있는지가 항상 궁금하거든요.


그러다 가끔

알지 못했던 것을 보면 혼자 속으로 재미있어 해요.


그냥.

웃기잖아요.


내가 생각하던 것들이 깨지는 탁 하는 순간

그런 것들이 제게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재미인 것 같아요.


저는 말하는 걸 좋아하고, 말 듣는 것을 좋아해요.

새로운 걸 경험할 때 좋고, 모르는걸 알게 되는 것이 좋아요.

저에겐 그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탁 하는 순간이거든요.


제겐 그 탁 하는 순간이 필요했나 봐요.




그렇게 하나씩 깨닫고 느끼게 되니 마음이 급해졌어요.

이제 행사가 이틀 남았거든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열심히 해보자”

“내가 원하던 것들을 담아보자”

얼른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집중해야 했어요.


-그날이 오니

그렇게 하루, 이틀이 흐르고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했어요.


행사 참여 전, 먼저 내려온 언니들은

나의 도전을 응원하며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나를 위해 사용해주었어요.


이 행사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걸로 내가 이루고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아는 그들은 목포 구경을 포기하고

함께 이야기 나눠주며, 함께 행사를 준비하며,

그날을 맞이해주었어요.


행사 당일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보고 싶었던 얼굴, 내려오기 전에 보았던 얼굴

그들 모두가 목포의 ‘우진장’에 모였고

2017년의 마지막 날을 드디어 함께 하게 되었어요.


그날 저는

너무너무 완전 진짜 엄청 많이 최고로 행복하고 좋았어요!


일층에도, 이층에도, 삼층에도, 옥상에도

내가 보고 싶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어딜 가든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는 그들이

이 공간에 퍼져 있다는 게

너무나 행복했고 꿈만 같았거든요.


-기획자의 어려움

그렇게 제가 기획한 첫 행사가 시작되었어요.


내가 지내던 목포를

함께 걸으며 소개해주는 워킹투어를 진행했고,


내가 맛있었던 피쉬앤 칩스를

함께 먹는 시식회를 진행했고,


보고 싶었던 얼굴들과 함께

얼굴을 마주하여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어요.


근데 이게 참.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는데

정작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어요.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막상 마주 앉아 풀 수 있는 시간 없이 흘러갔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게 되니 저도 모르게 울음이 나왔어요.

아마 속상했던 것 같아요.


너무 이야기하고 싶었고, 보고 싶었고,

드디어 만난다는 기대가 컸기에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것이

마주앉아 얼굴을 보지 못했던 것이

함께 숙소로 가 잠들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고, 속상했고, 화가 나기도 했나 봐요.


그렇게 한참을 속상해하는데 대표님이 들어왔어요.

그러고는 기획에 대한, 진행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주셨어요.


“다은씨, 아쉬움은 항상 남아요”

“기획자는 참여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즐거움을 느껴요”


머리로는 이미 행사가 진행되었고,

아쉬움은 어쩔 수 없고, 잘 끝냈어하며 다독였지만

마음이 속상한건 어쩔 수 없었나 봐요.


그렇게 다독이며 새벽에 혼자 숙소로 걸어가

방문을 열었는데 “다은이 왔어?, 고생했어, 얼른 자야지”

하며 자지 않고 있던 그들의 안부인사에 침대에 누우며 생각했어요.


“행복하다”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

다시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럴려고 이랬나보다”


우진장으로 생각보다 빨리 오게 되었던 것이,

그때 그 문장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원하던 것은 아니지만 3주년이라는 행사를 진행한 것이,

행사 준비가 척척 안 돼서 답답하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두 만날 수 있었고,

힘든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또 감사해졌어요.


이번 행사를 통해 느낀 것이 참 많았거든요.

이 먼 목포까지 절 보러 와준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행사를 진행할 때 전체적인 걸 고려하는 눈을 가지게 되었으며,

처음 하는 일들에 대한 어려움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졌고,

내가 하고자하는 방향이 있을 땐, 절충안보다 때로는 어필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모든 게 처음이었으니

많이 배우라고 많은 일들이 있었나봐요.


이러라고 이랬던 거겠죠?


사실 이 글도 처음이에요.

담고 싶은 말이,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처음이라

못 다한 말들이 많은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아요.


그런데 이제는 아쉬움과 함께

다음이 더 기대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몇일 전, 행사에 참여했던 언니오빠들과

하고 싶은 말들이 많다 해놓고 아무 말도 못해서

하고 싶은 말들이 많다 했는데 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아쉽다며 연락을 나누었었어요.


그런데 이런 답장이 돌아오더라구요.


이번 우리의 만남이 아쉬웠기 때문에

다음 만남이 더 설렐 것이라고


충분히 이야기 나누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에 하게 될 이야기들이 더 기대된다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무럭무럭 자라나라고ㅋㅋㅋ


고마워요.

내 옆에 이렇게나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줘서

날 보러와 준 사람들, 기회를 준 두 분, 함께 준비해주었던 우진장 식구들,

그리고 익스퍼루트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