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 내려가기로 했다. - '왜 목포에 가기로 했어?'

이지원
2017-08-31
조회수 7128

 왜 목포에 가기로 했어?

 대학 입학 때부터 쭉 살던 서울을 떠나, 고향도 아니고 연고 하나 없는 목포를 간다니 다들 묻는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느낌 가는 대로 선택을 내리다 보니 ‘왜?’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시작부터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처음은 동우 씨와 명호 씨의 글이었다. 어느 새벽,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페북을 스르륵 내리다 발견한, 누군가 '좋아요'를 누른 동우 씨의 게시물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별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로 시작하는 채용공고였다. 글에 걸린 링크를 타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함께 일을 할 당신에게’하는 제목을 가진, 명호 씨가 쓴 채용공고가 있었다. 따뜻한 글이었고, 좋은 사진들이었다. 전형적인 이력서가 아니라 ‘내가 했던 꼭 마음에 드는 작업과 문장을 보내달라’는 지원 방법까지 정말로 내 취향이었다. 사실 채용공고만으로도 꼭 일해보고 싶은 회사였다.



 두 번째는 면접 여행이었다. 홈페이지에는 단순히 1차 면접으로 쓰여있었는데, 마감일 하루 뒤에 전화한 명호 씨는 면접 대상자 모두와 목포 여행을 가자고 말했다. 마그리트 그림 같은 하늘과 함께 도착한 낯선 목포에서 동우 씨는 원도심 곳곳을 소개해주었다. 낡았지만 독특한 일제 강점기 시대 건물을 앞에 두고 ‘자, 눈을 감고 상상해보세요.’라는 말로 우리를 과거로 혹은 가까울 미래로 데려갔다. 그곳엔 한창 번화했던 거리가 있었고, 앞으로 우리가 꾸며 나갈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 속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목포 원도심을 소개받고, 지역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고, 도시와 하늘과 바다의 야경을 감상했고, 세월호를 바라봤다. 



 우진장에 돌아와서는 씻고 옥상에 둘러앉았다. 옥상 난간에는 알전구가 반짝이고 있었고, 제목 모를 노래가 이야기하기 적당할 정도의 크기로 흘렀다. 파랗고 노란 밤에 우리는 우리만의 시간 속에서 캔맥주를 땄다. 의자에 반쯤 파묻혀 맥주를 마시고, 별똥별을 보고, 반쯤 잠이 들었다가, 이야기하며 깨길 반복했다. 이런 순간을 자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햇빛이 따가울 낮에도, 조금은 바람이 차가울 밤에도. 우리는 머리 위에 있던 달이 언덕을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정리를 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 발표 준비를 했다. 여행 중 처음으로 면접 보는 기분이었다. 우진장에서 돌아가며 주제 발표를 했고, 개성 있는 사람들이 각자만의 독특한 발표를 마쳤다. 이어서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주는 피드백이 이어졌다.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개인별로 피드백을 해주는 그 자체가, 피드백의 세심한 내용이, 좋았고 배우고 싶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다 같이 마주 앉아 맥주를 마셨다. 여독에 지칠 법도 한데, 우리는 쉴 새 없이 이야기하며 결국 다음 여행을 기약하고서야 서로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했다.


  마지막은 명호 씨, 아영 언니, 동우 씨, 그러니까 목포에서 함께하기로 한 사람들이다. 서울에 돌아와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씩, 세 분을 만났다. 코엑스 부스를 서는 날에 찾아와 판매하던 배지를 사주기도 했고,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 공장공장 사람들은 만날수록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다정하지만 할 말은 다 하는 분이었고, 몽글몽글한 그림을 그리는 똑 부러지는 분이며, 할 일을 척척 해내는 손이 많이 가는 분이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며칠 지나지 않아 만나는데도 볼 때마다 점점 반가워졌다. 만날 때마다 배우고 싶은 부분이 많아졌고, 이 사람들과 점점 더 무언갈 하고 싶어졌고, 그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이 모여, 목포에 내려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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